항목 ID | GC60002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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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ak Hyeonsu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64년 3월 27일 - 박현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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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80년 5월 - 박현숙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23일 - 박현숙 전라남도청에서 사상자 수습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3일 - 박현숙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향하던 중 주남마을에서 계엄군으로부터 총격을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3일 - 박현숙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학교|수학지 |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남구 송암로 73[송하동 365-1] |
활동지 |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
활동지 | 주남마을 -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박현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사상자 수습을 하는 일을 도왔다.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어 박현숙은 시민군과 함께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향하던 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을 지나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80년 5월 21일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당시부터 박현숙은 전라남도청 지하실에서 사상자 수습을 도왔다. 5월 23일 사상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관이 부족해지자, 박현숙은 시민군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향하였다. 박현숙이 탄 버스가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을 지날 때 계엄군들의 총격이 가해졌다. 총소리와 함께 운전기사가 쓰러졌고, 바퀴에 구멍이 난 버스는 도랑으로 빠졌다. 그리고는 계엄군이 차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향해 계속해서 총을 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원 사망하였다.
5월 27일이 되어서야 박현숙의 시신은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져 검시를 받고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으로 이송되었다. 시체 검안서에 의하면 박현숙은 일곱 발의 총알을 맞아 두부, 흉부, 하복부 전신에 총상을 입은 채로 사망하였다.
가족들은 박현숙을 찾기 위해 두 달 가까이 광주 시내를 헤맸다. 그 즈음 망월묘지공원에 젊은 여성의 시신이 한 구 남아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은 박현숙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2-03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