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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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應河 |
영어공식명칭 | Sin Eungha |
이칭/별칭 | 경문(景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신.
[가계]
신응하(申應河)[?~1592]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할아버지는 신공제(申公濟), 아버지는 신련(申漣)이다. 부인은 김백균(金白勻)의 딸 울산김씨(蔚山金氏), 아들은 신어(申御), 신호(申淏), 신결(申潔)이다. 사위는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安州)에서 순절한 송도남(宋圖南)이다.
[활동 사항]
신응하는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성품이 강개하였으며 이익을 좇지 않았다. 음직(蔭職)으로 교관(敎官)을 제수(除授)받았다. 신응하는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교유하였는데, 고경명이 그를 전송하며 쓴 시 「송신경문환경(送申景文還京)」이 『제봉집(霽峯集)』에 실려 있다. 신응하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 서울에 있었다. 신응하는 고경명과 의병을 일으키기로 약속하고 집의 재산을 털어 가동(家僮)[한 집안의 노복(奴僕)]과 세 아들 신어, 신호, 신결을 데리고 경기도 과천(果川)에 이르렀다. 신응하는 왜군을 만나 꾸짖으며 굴복하지 않았으나 죽임을 당했다. 가동이 신응하의 시신을 수습해 죽은 곳에 묻었는데, 뒤에 사람들이 그곳을 입의동(立義洞)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