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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촌동 하대마을 선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729
한자 大村洞下大-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대촌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혜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67년 - 대촌동 하대마을 선돌 이전
성격 민속 신앙 유적|선돌
크기(높이,둘레) 60㎝[높이]|60㎝[폭]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대촌동하대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선돌.

[개설]

하대마을은 넓은 평야를 가진 큰 마을이었다. 풍천임씨(豊川任氏)가 마을에 맨 먼저 들어와 성촌(成村)하였다고 구전되며, 마을이 풍수지리상 배[船]의 형국인지라 샘[우물]을 파면 흉하다고 하여 솟대에 해당하는 짐대를 마을 안에 세웠다고 전해 내려온다.

[위치]

대촌동 하대마을 선돌은 마을 안 공동샘 옆에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인 당집 안에 있다.

[형태]

선돌의 크기는 높이 60㎝, 폭 60㎝이다.

[의례]

하대마을의 당산은 마을 앞 들녘에 할아버지 당산[귀목나무]과 할머니 당산[선돌]이 있었는데, 1967년에 마을 농지 정리를 하면서 나무는 베어버리고 선돌만 당집 안으로 옮겼다. 하대 당산제는 성촌할 당시부터 모셨다고 전해지며, 마을이 커서 원래는 일곱 군데의 장소에서 지내 왔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마을에 들어온 도둑이 자신도 모르게 밤새 당산 주위만 돌다 도망갔다는 이야기와 당산에 정성껏 치성을 드려 마침내 아들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황]

1970년대 새마을운동 사업으로 당산제 때 행해졌던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는 자취를 감추었고 마당밟이도 시들해졌다. 1990년경에 더 이상 당산제를 주도할 사람이 없어 제를 올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1993년에는 광주첨단과학국가산업단지가 건설되면서 마을 앞 들판이 매립되었고 하대마을도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대촌동 하대마을 선돌은 마을 공동체 신앙의 대상물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 광주광역시 북구문화원(http://gjbukgu.or.kr)
  • 광주광역시청(https://www.gwang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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