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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동 신촌마을 선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719
한자 忠孝洞新村-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충효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혜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 신앙 유적|선돌
크기(높이,둘레) 큰 선돌- 1.3m[높이]|50㎝[폭]|40㎝[두께]|작은 선돌- 80㎝[높이]|33㎝[폭]|20㎝[두께]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신촌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2기의 선돌.

[개설]

충효동 신촌마을 선돌은 신촌마을 앞 2기의 선돌을 말한다. 신촌마을은 광주광역시 제4수원지[석곡동 석곡수원지] 제방 밑에 있는 마을로 500여년 전에 남평문씨(南平文氏)들이 터를 잡아 성촌(成村)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남평문씨의 제각인 균산정(筠山亭), 서당이었던 괴양정(槐陽亭), 행주기씨(幸州奇氏)의 서재였던 서석단(瑞石壇)이 있다.

[위치]

마을 입구에 당산나무와 함께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형태]

2기의 선돌 중 큰 선돌의 크기는 높이 1.3m, 폭 50㎝, 두께 40㎝이고, 작은 선돌은 높이 80㎝, 폭 33㎝, 두께 20㎝이다. 충효동 신촌마을 선돌은 인공적으로 돌을 다음은 흔적이 뚜렷하며,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상협하관(上狹下寬)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의례]

신촌마을 앞에 흐르는 큰 내에는 보(洑)가 있는데, 어느 해 홍수에 보가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정자나무 앞에 모여 당산 할아버지와 당산 할머니를 불러 보를 보호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정자나무에서 하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와 막대로 갈라 물길을 잡아주어 홍수 피해를 보지 않고 마을이 무사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을 기해 당산신(堂山神)에게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당산제와 함께 선돌에도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큰 선돌 밑에 음식을 묻었다고 한다.

[현황]

1990년대까지 정월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낸 뒤 선돌에 음식을 묻는 헌식을 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의례는 행해지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충효동 신촌마을 선돌은 마을 공동체 신앙의 대상물로서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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