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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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石臺-李正會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58년 - 이정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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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39년 - 이정회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이정회 |
[정의]
개항기 학자 이정회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위치한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시.
[개설]
「광석대(廣石臺)」를 지은 이정회(李正會)[1858~1939]의 자는 중현(仲賢), 호는 심재(心齋), 본관은 광주이다. 1858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아버지 이기영(李基榮)과 어머니 반남박씨(潘南朴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정회의 문집으로 1954년에 편찬한 『심재유고(心齋遺稿)』가 있는데, 사위 양회갑이 서문을 썼다. 「광석대」의 창작 시기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정회의 무등산 유산기인 「서석록(瑞石錄)」을 보면 무등산을 유람한 때가 1919년 4월 8일이다. 따라서 「광석대」의 창작 시기는 1919년 4월 8일 이후로 추정된다.
[구성]
「광석대」는 1구에 7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이다.
[내용]
서석천년광석대(瑞石千年廣石臺)[서석 천 년의 광석대여]/ 기인도차승연개(幾人到此勝筵開)[몇이나 이곳을 찾아 훌륭한 연회를 열었던가]/ 수운지축명인호(誰云地逐名人好)[누가 말했나 땅은 명인 따라 좋아지기에]/ 불자초인자이래(不自招人自爾來)[스스로 사람을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것이라고]
[특징]
「광석대」의 시구 중 “서석 천 년의 광석대여[瑞石千年廣石臺]”에서 '서석'은 무등산을 이르는 이칭(異稱)이며, '광석대'는 서석대, 입석대와 함께 무등산을 대표하는 주상절리 중 하나이다. 천 년이라는 유구한 시간을 나타내는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무등산의 역사성과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좋은 곳에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표현으로 무등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석대」는 이정회의 문집 『심재유고』 제2권 「잡저」에 실린 무등산 유산기인 「서석록」과 함께 전해지는 무등산권 문학이다. 이정회는 이외에도 「등천황봉(登天皇峰)」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무등산 천왕봉의 기세를 노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