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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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一窩遺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고성혜 |
간행 시기/일시 | 1964년 - 『일와유고』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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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
성격 | 문집 |
저자 | 정제만 |
간행자 | 정경림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2행 24자 |
규격 | 27.5×18.6㎝[전체 크기]|21.8×16.1㎝[반곽] |
어미 |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文魚尾) |
[정의]
전라도 광주 출신의 근대 유학자인 정제만의 문집.
[저자]
정제만(鄭濟萬)[1872~1942]의 자는 시일(始一), 호는 일와(一窩), 본관은 광주이다. 아버지는 송은처사(松隱處士) 정해석(鄭海錫)이다. 나주적량방[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에서 태어났다. 정제만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1845~1910], 월파(月坡) 정시림(鄭時林)[1839~1912] 등과 학문을 강론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편찬/간행 경위]
『일와유고(一窩遺稿)』는 정제만의 아들 정경림(鄭京林)과 문하생이 정규종(鄭圭綜)에게 서문을, 노기우(盧基禹)·나도휘(羅燾輝)·김유술(金有述) 등에게 발문을 받아 1964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일와유고』는 2권 1책의 석인본이다. 전체 크기는 27.5×18.6㎝, 반곽(半郭)은 21.8×16.1㎝이다. 행마다 경계가 있다. 행자수는 12행 24자이며, 어미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文魚尾)이다.
[구성/내용]
『일와유고』의 권1은 오언절구·칠언절구·칠언율시의 시, 권2는 서(書)·서(序)·묘지명(墓誌銘)·기(記)·가장(家狀)·제문·행장(行狀)·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일와유고』는 정제만의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나 갑오개혁에 대한 인식, 척사론을 개진한 글 등을 담고 있어 이 시기 국내외 정세에 대한 지식인의 인식과 태도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