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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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西遺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고성혜 |
간행 시기/일시 | 1955년 - 『석서유고』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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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 |
성격 | 문집 |
저자 | 김상기 |
간행자 | 김호성 |
권책 | 5권 1책 |
행자 | 11행 22자 |
규격 | 28.9×20.5㎝[전체 크기]|20.3×15.4㎝[반곽] |
어미 |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和文魚尾) |
[정의]
전라도 광주 출신의 근대 유학자 김상기의 문집.
[저자]
김상기(金相基)[1891~1954]의 자는 찬경(贊敬), 호는 석서(石西),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지낸 초헌(蕉軒) 김용후(金容厚)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에는 부친 김용후에게, 그 후에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1846~1916],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1855~1910]에게 수학하였다. 노년에는 광주 월산동에 석서정사(石西精舍)를 짓고 문인들과 교유하며 지냈다.
[편찬/간행 경위]
『석서유고(石西遺稿)』는 아들 김호성(金鎬聖)이 유문을 수집하고, 광산(光山) 김문옥(金文鈺)이 쓴 서문과 함양(咸陽) 여창현(呂昌鉉)이 쓴 발문을 받아 1955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석서유고』는 5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석인본이다. 전체 크기는 28.9×20.5㎝,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半郭)은 20.3×15.4㎝이다. 행마다 경계가 있다. 11행 22자로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和文魚尾)이다.
[구성/내용]
『석서유고』의 권1은 쌍청당[「쌍청당흥여긍공맥(雙淸堂與肯堂共麥)」], 동대재[「차송규현동호재운(次宋圭顯東壺齋韻)」, 「선적동방송동호(仙跡洞訪宋東壺)」], 만오정[「차만오정운(次晩悟亭韻)」], 엄이재[「근차엄이재운(謹次掩耳齋韻)」], 필암서원[「근차장성필암서원운(謹次長城筆巖書院韻)」]과 같은 이름난 누정, 서원 등을 그린 시와 무등산[「등무등산(登無等山)」], 원효사[「제원효사(題元曉寺)오수(五首)」] 등 산과 사찰을 유람한 후 지은 다양한 시로 구성되어 있다. 권2는 「상송사기선생(上松沙奇先生)」, 「상면우곽선생(上俛宇郭先生)」 등의 서(書), 권3부터 권5는 부록으로 수창시(酬唱詩), 왕복서찰(往復書札), 행장(行狀)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석서유고』에는 다수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지은 글이 많다. 이들은 한 지역에 밀집되어 있지 않고 각 지역을 아우르고 있어 더욱 의의가 있다. 그 밖에도 시와 글 역시 당대의 감성과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하여 문학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