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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유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739
한자 錦狂遺稿
영어공식명칭 Geumgwangyugo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현대/현대
집필자 백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금광유고』 간행
소장처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지도보기
성격 시문집
저자 임규호
편자 임한명|임동관
간행자 임한명|임동관
권책 3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9.8×21.2㎝[전체 크기]|22.6×15.9㎝[반곽]
권수제 금광유고
판심제 금광유고

[정의]

근대의 문인 임규호의 유문을 엮어서 간행한 시문집.

[저자]

임규호(林圭鎬)[1856~1929]의 자는 경지(京止), 호는 금광(錦狂),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1856년(철종 7)에 광주(光州)에서 임기창(林基昌)과 동래정씨(東萊鄭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백하(栢下) 양상형(梁相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성격이 차분하고 공부에 열중하여 스승의 칭찬을 받았다. 학업이 성취되자 과거에 응시하려 하였으나 시험의 협잡과 매관매직의 성행에 좌절하고 과거 응시의 뜻을 버리고 경학의 탐구에 정진하였다. 임규호는 동학란이 일어나기 전에 전토를 모두 팔아 일가친척에게 분배하여 난을 피하게 하였다. 노비들에게도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고 전토를 나누어 주었다. 세상이 날로 혼란하여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시해에 이은 단발령, 한일합방 등을 강요당하자 두문불출하였다. 본인을 미친 사람이라 자처하고 강산을 떠돌며 울분에 찬 여생을 보내다가 1929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편찬/간행 경위]

『금광유고(錦狂遺稿)』는 임규호의 아들 임한명(林漢明)과 손자인 임동관(林東觀)이 임규호의 유문(遺文)을 수집하여 울산(蔚山) 김상진(金相晋)의 서문(序文)을 받아 1980년에 발간하였다.

[형태/서지]

『금광유고』는 3권 1책의 석인본으로,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전남대학교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전체 크기 29.8×21.2㎝이고, 반곽(半郭) 22.6×15.9㎝이다. 계선이 없으며, 행자수는 10행 20자, 어미는 없다.

[구성/내용]

『금광유고』는 권1에는 시(詩)가 수록되어 있다. 오언절구(五言絶句)와 부원운(附原韻), 부차운(附次韻), 칠언사율(七言四律), 칠언절구(七言絶句)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칠언사율 시가 가장 많다. 권2에는 서(書)와, 회갑운(回甲韻), 만시(輓詩), 족종(族從) 임상필(林相弼)이 쓴 금광기(錦狂記), 이병수(李炳壽)가 찬한 묘갈명(墓碣銘)과 임동준(林東俊)이 찬한 발(跋)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강직한 학자였던 임규호의 시문집 『금광유고』는 당시 정치·사회·문화를 연구하는 데 가치가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 전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광주권문집해제』(광주직할시, 1992)
  • 전남대학교도서관(http://lib.j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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