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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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谷遺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민 |
편찬 시기/일시 | 1902년 - 『명곡유고』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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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02년 - 『명곡유고』 간행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
소장처 | 고려대학교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 5가 1-2] |
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연희동 25] |
소장처 | 호남지방문헌연구소 -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 367번길 5[중흥동 645-14]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오희도 |
편자 | 오준선 |
간행자 | 오준선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23.0 x 15.2㎝[반곽(半郭)] |
어미 | 상삼엽화문어미(上三葉花紋魚尾) |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오희도(吳希道)[1584~1624]의 문집.
[개설]
조선 후기 문신 오희도의 글과 기록을 9대손 오준선(吳駿善)이 편집, 간행한 문집이다.
[저자]
오희도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득원(得原), 호는 명곡(明谷)이다. 1602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23년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의 관원으로 추천을 받아 들어갔다. 기주관을 대신하여 어전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데 민첩하여 검열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였다. 오희도의 나이 41세의 일이었다.
오희도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와 함께 살면서 독서로 서로 권하고 격려하며 가정이 화목하였다. 금성(錦城)의 옛 고향 대명곡(大明谷)에 거처하면서 호를 명곡이라고 지어 불렀다. 만년에는 뒷산 기슭에 집을 지어 망재(忘齋)라 부르며 속물스러운 뜻을 버리고 기질을 순수하게 하는 데 힘썼다.
[형태/서지]
『명곡유고』는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활자본이다. 반곽(半郭)은 23.0 x 15.2㎝이고, 10행 20자이며, 상3엽화문어미(上3葉花紋魚尾)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호남지방문헌연구소[광주광역시 소재]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명곡유고』 권 1에 시·사(詞), 권2에 잠(箴)·소(疏)·기(記)·서(序)·설(說)·제문(祭文)·책문(策問) 등이 있으며, 부록으로 묘갈명·비음기(碑陰記)·묘지명·유적·제문·도장사축문(道藏祠祝文)·도장사우상량문(道藏祠宇上樑文)·망재기(忘齋記)·제현창수(諸賢唱酬)·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명곡유고』는 전라남도 담양 지역에서 활동한 오희도의 학문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