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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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卓氏世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지민 |
[정의]
전라도 광주를 본향으로 하는 광산탁씨 일가 중 고려 후기 문인인 탁광무와 탁신 부자의 시문집.
[저자]
탁광무(卓光茂)[?~?]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자는 겸부(謙夫), 호는 경렴정(景濂亭), 시호는 문정(文正)이고,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생몰년은 전하지 않지만, 1331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1365년에 내서사인(內書舍人)이 되었다. 1366년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제수되었다.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로서 신돈(辛旽)에게 아부하던 홍영통(洪永通)을 폐하여 서인(庶人)을 삼고 가산을 적몰하라고 탄핵한 바 있다. 벼슬이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으며, 문명이 높았다. 저서로는 『경렴정집』이 있다. 성주의 오계사(梧溪祠)에 제향되었다.
탁신(卓愼)[1367~1426]의 자는 자기(子幾)·겸부(謙夫)·계위(係危), 호는 죽정(竹亭),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탁광무의 아들이다. 138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에서 감지(甘旨)를 지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1398년에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 용담현령(龍潭縣令)·좌정언(左正言)·장령(掌令) 등을 거쳐 집의(執義)가 되었으나, 설화(舌禍) 사건으로 나주(羅州)에 장류(杖流)되고, 다시 전농정(典農正)·성균사성(成均司成)·동부대언(同副代言)을 지냈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태종 때 지신사(知申事)·경승부윤(敬承府尹)·이조참판(吏曹參判)·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등을 지내고, 1421년(세종 3)에 의정부참찬(議政府參贊)에 올랐다. 경학(經學)에 밝았고, 무예(武藝)와 음률(音律)에도 능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광산탁씨세고(光山卓氏世稿)』는 1600년(선조 33)에 후손 탁세정(卓世亭)이 『탁씨세보사실(卓氏世譜事實)』 1권을 만들었고, 1788년(정조 12)에 후손 탁승운(卓昇運)이 『경렴정유고(景濂亭遺稿)』와 『죽정유고(竹亭遺稿)』를 수집·정리하여 간행하였다. 탁유문(卓有文)이 여기에 부록을 덧붙여 편집·간행한 것을 1827년(순조 27)에 중간한 것이다.
[형태/서지]
『광산탁씨세고』는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광산탁씨세고』의 상권은 부친의 『경렴정일고(景濂亭逸稿)』이고, 하권에는 아들의 『죽정일고(竹亭逸稿)』가 수록되어 있다. 부록으로 『광산탁씨세보사실(光山卓氏世譜事實)』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광산탁씨세고』에 수록된 탁씨 부자의 시는 『동문선(東文選)』에 실릴 만큼 탁월하게 뛰어난 명시(名詩)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한시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