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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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漆石農樂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칠석 농악 고싸움놀이보존회에서 편찬한 『옻돌마을 사람들과 고싸움놀이』에 관련 내용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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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 칠석 농악 피아에서 간행한 『광주칠석고싸움놀이』에 관련 내용 수록 |
채록지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설]
칠석 농악은 과거 벼농사에 행해졌던 두레 농악, 당산제(堂山祭)를 모실 때 치는 당산굿, 마당밟이를 할 때 치는 매구, 고싸움놀이를 할 때 치는 농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채록/수집 상황]
2004년 고싸움놀이보존회에서 편찬한 『옻돌마을 사람들과 고싸움놀이』와 2005년에 간행된 『광주칠석고싸움놀이』에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구성 및 형식]
과거 칠석동에서 마당밟이를 할 때에는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堂山)에 가서 인사를 하고, 마을의 공동샘에서 샘굿을 쳤다. 이어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돌면서 문굿, 성주굿, 조왕굿, 철룡굿, 곳간굿, 외양간굿, 샘굿, 마당굿 등을 쳤다.
[내용]
칠석 농악은 칠석동 당산제와 칠석 고싸움놀이에서 결코 빠질 수 없었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과거에 칠석동에는 다른 마을들과 구별되는 칠석동 고유의 농악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당산제 등이 마을의 청장년 세대에게 농악이 전수될 수 있는 비공식적 교육의 장이었다. 칠석동 상촌과 하촌에는 과거 농악을 신명나게 치는 주민들이 있었다. 강종대, 강대순, 장형순, 이순옥, 김효근, 이삼용 등이 당산제뿐 아니라 고싸움놀이에서 그 실력을 발휘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칠석 농악의 전승이 점점 약화되자, 1999년 3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농악보존회인 ‘칠석농악단’을 구성하였다. 설립 취지는 전통 농악을 보전·전승하며 교육 및 공연을 통해 농악의 저변확대 및 진흥 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초대 농악단장은 상촌의 문흥식이었고 2대 단장은 이성만이 맡았다. 칠석농악단은 2010년 광주광역시 민속예술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칠석 농악의 편성은 옛날에는 동·서부 각각 징 둘, 꽹과리 셋, 장고와 북 서너 개, 소고 열 개쯤이었으며, 그 외 잡색으로 양반, 조리중, 할미, 각시, 포수 등이 뒤를 따랐다. 이 칠석 농악은 호남농악의 우도굿에 속하므로 복색은 상쇠와 부쇠만이 벙치를 쓰고, 그 외 사람은 모두 청색·홍색·황색·백색의 꽃송이가 달린 고깔을 썼다. 드림은 남색·홍색·황색의 삼색 드림을 매는데, 두 개는 양어깨 위로부터 겨드랑이 밑으로 해서 가위표로 고내어 묶고, 하나는 허리를 돌려 고내에 묶었다.
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때의 농악대 편성은 동·서부 각각 징 하나, 꽹과리 둘, 장고 하나, 북 하나, 소고 열 개였다. 복색은 위아래 하얀 한복에 남·홍·황색의 삼색 드림을 맸으며 상쇠와 부쇠는 벙치를 쓰고 그 외 사람은 모두 고깔을 썼다. 그러나 이 고깔에도 장고와 북을 치는 사람은 백색의 꽃송이 네 개가 달린 백색 고깔을 썼으며, 그 나머지는 청색·홍색·황색·백색의 꽃송이가 달린 고깔을 썼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칠석동에서는 1970년대까지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집집마다 돌면서 마당밟이를 하였다. 마당밟이를 하면 한 해의 액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집주인은 농악대가 집으로 들어오면 음식을 내어주기도 하고 돈을 내놓기도 하였다. 마을에서 중요한 공간인 마을 우물에 들러 샘굿을 쳤다.
칠석 고싸움놀이를 할 때 농악이 큰 역할을 한다. 동부팀과 서부팀이 등장할 때 상대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있는 힘껏 농악을 치며 들어선다. 줄다리기를 할 때도 악기를 힘껏 두드리며 사기를 북돋는다.
[현황]
1970년대 이후 두레 농악은 자취를 감추었고, 마당밟이도 대폭 축소되었다. 당산굿도 간략화되었으며 농악대의 규모도 축소되었다. 현재는 상·하촌 주민들이 함께 농악을 치기도 하고, 각자 마을 행사에서 독자적으로 농악을 치기도 한다. 상·하촌 각 마을에는 별도의 농악기가 있으며, 농악단이 나가는 행사에는 상·하촌 모두 악기를 모아 연습을 하여 행사를 준비한다.
[의의와 평가]
칠석 농악은 마당밟이와, 당산제 고싸움놀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정월 초부터 정월대보름까지 행해진 마당밟이를 통해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축원하였으며, 당산제의 시작과 끝이 농악을 통해 실현되었다. 고싸움놀이에서는 전의(戰意)를 북돋우며 힘을 모으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 농악대의 규모가 축소되고 약화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