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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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銀缸藏-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0년 9월 19일 - 「은항장 이야기」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거주하는 양운진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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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0년 - 「은항장 이야기」 광주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 |
채록지 | 박뫼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
성격 | 설화|마을전설|지명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죽산박씨 |
모티프 유형 | 마을의 유래|숨겨진 금덩이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숨겨진 은 항아리에 관한 이야기.
[개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박뫼마을의 유래와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박씨의 은 항아리에 관한 전설이다. 원래 박씨의 집성촌이었던 마을에 양씨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마을을 떠난 박씨가 많은 금덩이를 땅속에 묻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0년 9월 19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거주하는 주민 양운진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2000년 광주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되었다.
[내용]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의 박뫼마을은 제주양씨(濟州梁氏)의 집성촌이지만 원래는 죽산박씨(竹山朴氏)의 마을이었다. 그래서 박뫼마을의 이름도 박씨들이 사는 산등성이라는 뜻에서 박산(朴山)이었는데, 나중에 박(博)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이곳에 대대로 죽산박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1519~1581]이 박씨 집안으로 장가를 오면서 처가살이를 하였다. 양송천이 장가온 후 과거에 급제하고 광주목사 등의 높은 벼슬을 하게 되면서 양씨 집안이 융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박씨 집안이 쇠퇴하였다.
양송천이 장가올 무렵 박뫼마을에 부유한 박씨가 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양씨 집안 사람들이 세를 불려갈 무렵에는 박씨들은 몇 집 남아 있지 않아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약탈의 표적이 되었다. 재물이 많은 사람들이 동네를 떠야겠다고 생각하였는데, 많은 금덩어리를 들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박씨는 은 항아리에 금덩이를 넣고 땅속 깊숙이 묻기로 하였다. 마을을 떠나기 며칠 전, 박씨는 언젠가는 후손들이 금덩이를 찾을 것이라며 금덩이를 땅속 깊이 묻고 마을을 떠났다. 여러 차례 전쟁을 거쳤지만 금덩이는 찾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쇠꼬쟁이로 땅을 찔러 대곤 한다.
[모티프 분석]
「은항장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마을의 유래’와 ‘숨겨진 금덩이’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박뫼마을은 죽산 박씨들이 사는 산이라고 하여 ‘박뫼’ 혹은 ‘박산’이라 불렀다는 마을 이름의 유래가 전해진다. 그리고 후에는 제주양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박씨 ‘박(朴)'에서 넓을 ‘박(博)’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점에서 마을의 이름에 마을의 주도 세력이 바뀐 역사가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마을에 박씨가 묻어둔 금은보화가 있다는 이야기에서도 부유했던 박씨들이 급하게 마을을 떠나면서 처분하지 못한 재물이 묻혀 있을 것이라는 민중들의 호기심과 부에 대한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