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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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査頓-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0년 9월 7일 - 「사돈의 유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선동마을에 거주하는 임정호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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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0년 - 「사돈의 유래」 광주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 |
채록지 | 선동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신흥길 82[남산동 677-3] |
성격 | 설화|어원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양가 사돈 |
모티프 유형 | 어원의 유래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사돈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개설]
광주광역시에서 광산구 본량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사돈의 어원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돈을 맺은 양가 집안이 말뚝을 쳐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하여, 말뚝 ‘사(査)’ 자와 두드릴‘ 돈(頓)’ 자를 써서 ‘사돈(査頓)’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언어 유희적인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0년 9월 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선동마을에 거주하는 임정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2000년에 광주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설화』에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에 광산 고을 어느 마을에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사는 집안이 혼인을 하여 사돈을 맺었다. 한 동네에서 혼인을 잘 하지 않는데, 두 집안은 혼인 전부터 한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왔다. 사돈을 맺은 이후 두 집안의 사이는 더욱 좋아져서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 공연히 시기를 하였다. 혼인 이후에도 한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면 울타리 옆으로 와서 같이 먹게 건너오라며 큰 소리로 떠드는 일이 잦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을 느낀 두 사돈 집안은 친밀한 교분을 유지하면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방도를 고민하였다. 고민 끝에 신랑의 아버지가 양가의 마당에 큰 말뚝을 박아놓고 말뚝머리를 쳐서 신호를 보내자고 하였다. 말뚝을 한 번 치면 놀러 오라, 두 번 치면 놀러가겠다는 신호를 보내 의사를 전달하였다. 이렇게 말뚝을 두드려 의견을 교환했다고 하여, 말뚝 ‘사(査)’ 자와 두드릴 ‘돈(頓)’ 자를 써서 ‘사돈(査頓)’이라는 말이 생겼다.
[모티프 분석]
「사돈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어원의 유래’이다. 어원에 대한 유래담은 민간 어원으로 사적(史的)인 사실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어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사돈’의 경우, 위의 이야기 외에도 고려의 장군 윤관(尹瓘)[?~1111]과 관련한 이야기를 통해 ‘사돈’의 어원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윤관과 오연총이 서로 사돈을 맺었는데, 어느 날 서로 사돈을 생각하며 술동이를 들고 사돈댁을 향하였다. 그런데 강물이 불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서로 강 건너에서 자신이 가져온 술을 마셨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등걸나무[査]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머리를 숙이며[頓] 술을 마셨다. 이때부터 자녀를 결혼시킨 관계를 사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역시 ‘사돈’이라는 한자어를 풀어 지어낸 이야기로 언어 유희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어원의 유래담에서는 언중(言衆)의 풍부한 상상력과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