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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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峯先生-山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 「고봉 선생의 산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거주하는 기세옥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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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고봉 선생의 산소」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청량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
관련 지명 | 월봉서원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452 |
채록지 | 너부실마을「고봉 선생의 산소」 채록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
성격 | 설화|인물전설|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기대승|제자 |
모티프 유형 | 기대승이 풍수설로 자신의 묏자리를 정함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봉 기대승에 관한 이야기.
[개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자기가 묻힐 묏자리를 스스로 정했는데, 풍수설에 따라서 기대승의 후손이 끊겼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9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거주하는 기세옥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1990년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고봉 기대승이 여름 동안 광산동 청량산(淸凉山)에서 거처한 후에 제자와 함께 산을 내려오다가 자신이 죽은 뒤에 묻힐 묏자리를 정하였다. 제자는 기대승이 정한 자리가 길이 끊긴 절손지지(絶孫之地)로 후손이 끊어질 것이라며, 명당이 아니라고 하였다. 기대승은 제자가 본 풍수가 맞다고 하면서, 형님의 자손들도 자신의 자손이니 후에 양자를 삼아서 집안의 대를 계승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묻힐 곳은 백대 향화지지(百代香火之地)로 좋다고 하였다. 기대승은 죽은 뒤에 자신이 정한 자리에 묻혔고, 제자의 견해대로 증손 때 절손(絕孫)이 되어서 양자를 들여 대를 이었다. 기대승의 산소는 현재 광주광역시 광곡(廣谷)[너브실마을] 서북쪽에 있으며, 월봉서원에서 봄과 가을에 제향(祭享)을 지낸다.
[모티프 분석]
「고봉 선생의 산소」는 고봉 기대승과 관련한 일화적 성격의 이야기이다. 고봉 기대승이 자신이 묻힐 묏자리를 직접 정했고, 풍수설로 제자와 논쟁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기대승은 손이 끊길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대부 집안의 명예를 잇기 위해서 자신의 묏자리를 정하였다. 이 이야기는 허구적 성격의 설화이기보다는 사실적 성격의 일화이며, 기대승 집안을 중심으로 전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