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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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童-三兄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염승연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금동마을과 삼형제 다리에 관한 이야기.
[개설]
「금동마을과 삼형제 다리」는 금동마을과 삼형제 다리의 유래에 관한 지명전설이다. 금덩어리를 뜻하는 '금(金)' 자와 삼형제를 지칭하는 아이 '동(童)' 자가 합쳐져 금동마을이 되었으며, 삼형제가 놓았다는 다리는 경지정리사업으로 인해 땅속에 묻혔다.
[채록/수집 상황]
「금동마을과 삼형제 다리」는 1985년 광산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광산군지』에 처음 수록되었고, 이후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다시 수록되었다.
[내용]
아주 먼 옛날, 광산군 삼도면 김동리에 힘이 센 삼형제가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한 상태에 놓이게 되자, 삼형제는 의논 끝에 약초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약초는 보이지 않았고, 지친 삼형제는 기진맥진하여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꿈속에서 산신령이 삼형제 앞에 나타나서 "나는 이 산의 산신령인데, 너희들이 찾는 약초는 이 산에는 없다. 이 산을 내려가면 큰 냇가가 있을 것이니 그 내를 건너가거라. 그러면 하늘에서 별 하나가 떨어지고, 그때 너희들이 찾고 있는 약초가 보일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에 삼형제가 그 큰 냇가를 어떻게 건널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산신령은 "냇가에 이르면 큰 조약돌 세 개가 있을 테니, 그 돌을 냇물에 던지도록 하여라. 그러면 다리가 놓여질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삼형제는 잠에서 깨어나 서로 꿈이야기를 하면서 산을 내려갔다. 과연 큰 내가 나오고 큼직한 조약돌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삼형제가 기쁜 마음으로 조약돌을 들어 냇물에 던지려 하는 찰나, 살려 달라는 젊은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삼형제가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보니, 큰 호랑이가 여인을 입에 물고 있었다. 힘이 센 삼형제가 일시에 돌을 던졌고, 호랑이는 머리에 돌을 맞아 뻗고 말았다. 삼형제는 실신한 여인을 등에 업고 집으로 데려가 극진히 간호하였다.
얼마 후, 약초 생각을 다시 한 삼형제는 당황하였다. 삼형제는 의식을 잃은 여인을 방에 눕혀 두고는 다시 냇가로 달려가 산신령이 일러주었던 조약돌 한 개를 집어 힘껏 물속으로 던졌다. 이후 연거푸 조약돌 두 개를 다 던지자, 다리가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삼형제는 조심조심 다리를 건넜고,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별 한 개가 꼬리를 끌고 냇가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삼형제가 별이 떨어진 곳으로 급히 가 보니, 땅이 크게 파인 곳에 풀뿌리 같은 것이 있었다. 삼형제는 풀뿌리를 캐어 집으로 돌아가기가 바쁘게 약탕관에 넣어 달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삼형제는 호랑이에게 물려갈 뻔했던 여인을 생각하고는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여인은 온데간데없었다. 깜짝 놀라 삼형제가 이불을 들추니, 그 이불 밑에 눈부신 황금덩이가 놓여 있었다. 이후, 풀뿌리를 달여 마신 아버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병환이 완쾌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마을을 '금동'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때 놓인 다리를 '삼형제 다리'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다리는 1980년대 초에 경지정리사업으로 인해 땅속에 묻혔다.
[모티프 분석]
「금동마을과 삼형제 다리」의 주요 모티프는 '효성과 우애에 기반한 지명유래'이다. 삼형제는 병든 아버지를 모셨는데,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자, 의논하여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줄 약초를 구하러 길을 나섰다. 삼형제는 서로 합심하여 산신령의 명에 따라 조약돌을 던져 다리를 만들었다. 또한, 호랑이에 물려 죽을 위기에 놓인 여인도 지나치지 않고 합심하여 구하여 간호하였다. 삼형제의 효심과 우애, 의협심은 산신령이 꿈속에서 삼형제가 약초를 캘 수 있도록 조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삼형제들은 그동안의 행동과 성품에 대한 보상으로 금덩이를 받았다. 삼형제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여인이 금덩어리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금덩어리를 뜻하는 '금(金)' 자와 삼형제를 뜻하는 아이 '동(童)' 자가 합쳐져 마을 이름이 금동마을로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형제 다리는 금동마을 인근에 위치한 삼도동 내기마을과 복골마을 사이에 있었는데, 1980년대 초에 경지정리사업으로 인해 땅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