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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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本良洞立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염승연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1월 11일 - 「본량동 입석」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매동마을에 거주하는 송근호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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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입석」 『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입석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220-1 |
채록지 | 매동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매동마을 |
성격 | 설화|지명전설 |
모티프 유형 | 유적|지명유래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입석에 관한 이야기
[개설]
입석마을에는 「본량동 입석」의 유래와 역촌에 관한 지명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채록/수집 상황]
1989년 1월 11일 광산구 본량동 매동마을에 거주하는 송근호[남, 78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입석마을은 마을에 입석[선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입석은 마을 모정(茅亭)에 있지 않고 동네의 한 집안에 있는데, 입석의 높이가 꽤 높다. 입석은 조선 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나주목사가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그 입석 옆 원두막에서 하룻밤씩 묶고 가곤 하였다. 그곳이 옛날 나주로 가는 길목인 역촌(驛村)이었기 때문인데, '입석', '비석거리'라고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본량동 입석」의 주요 모티프는 '유적에 따른 지명유래'이다. 입석마을이란 이름은 마을 안에 입석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는데, 입석은 선사 시대에 자연석이나 일부를 다듬은 큰 돌을 세운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이다. 대부분의 입석 모양은 주로 널돌이나 돌과 돌이 끼워진 음양석 형태를 자연석 그대로 사용하며, 마을 입구나 들 가운데 세워졌다. 하지만 입석마을의 입석은 마을이 아닌 민가 안에 있고, 길쭉한 화강암 기둥을 다듬어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이다. 6.25전쟁 이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마다 제사를 지냈지만, 그 이후에는 시행되지 않고 개인적으로만 제를 지낸다고 한다. 입석마을의 입석은 1989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