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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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村洞碑石嶝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 「도촌동 비석등」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 주민 김채균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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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도촌동 비석등」 『광주의 전설』에 「도촌의 비석등」으로 수록 |
관련 지명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
관련 지명 | 비석등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
채록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 |
성격 | 설화|지명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조군헌|안청공|광산김씨|순천박씨|장흥고씨|풍양조씨 |
모티프 유형 | 참샘에 관한 이야기와 지명유래 설명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전해 내려오는 도천동 참샘과 비석등에 대한 지명전설.
[개설]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참샘의 전승 이야기와 비석등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에 거주하는 제보자 김채균(金彩均)의 이야기를 1989년 채록하였으며, 1990년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도촌마을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순천박씨(順天朴氏), 장흥고씨(長興高氏)가 주류를 이루며 살아왔다. 옛날에 박씨들이 몇 집 모여 살고 있는 곳에 풍양조씨 댁 부인이 산고(産苦)가 들었다. 풍양조씨 댁 부인은 마을에서 제일 덕이 있는 안청공의 집에 가서 아들을 낳았다. 풍양조씨 집안은 아들을 낳은 기념으로 큰 잔치를 베풀었다. 마을 인근의 관리들이 아들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서 마을에 모였다. 도촌마을에는 물이 마르지 않은 참샘이 있었는데, 잔치에 온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느라 참샘이 말라 버렸다.
풍양조씨 5대손 조군헌이라는 사람이 광주목사가 되었다. 조군헌은 할아버지의 태 자리에 비석을 세웠고, 많은 사람들이 조군헌의 출세를 축하하기 위해서 마을을 찾았다. 이때에도 마을의 참샘이 말라 버렸다. 조군헌 할아버지의 비석이 세워진 곳을 비석등이라고 불렀다.
[모티프 분석]
「도촌동 비석등」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도촌마을 비석등의 지명유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도촌마을이 형성된 유래를 짧게 소개하고 있으며, 마을에서 출세한 사람이 자신의 가문을 높이기 위해서 세운 비석 때문에 비석등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