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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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龍洞-由來 |
이칭/별칭 | 복룡마을 솔무데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 「신용동 솔무데기 유래」 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주민 김진철(남 1928년생)의 이야기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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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신용동 솔무데기 유래」 『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복룡마을 - 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
관련 지명 | 용진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동 |
채록지 | 복룡마을 - 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
성격 | 설화|지명전설|풍수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김녕김씨|선각자|신석유(申錫游) |
모티프 유형 | 마을의 시작|용(龍) 지형|비보풍수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 복룡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마을 소나무숲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개설]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충청도에서 전라도 광주 신용동으로 이주해 정착한 이야기와 화재를 방비하기 위해서 비보풍수로 소나무숲을 조성한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광주광역시 북구 신용동에 거주했던 제보자 김진철(金鎭哲)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1990년에 발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복룡은 한자로 엎드릴 복(伏), 용 용(龍) 자를 쓴다. 용이 드러누워 있다는 뜻이다. 복룡마을은 김녕김씨가 이주해서 형성되었다. 김녕김씨는 충청도 영동에서 전라도 광주 하남으로 이주했다. 이후 일곡 교산마을로 옮겼지만 마을 터로는 너무 비좁았다. 그래서 용이 누워 있는 곳인 복룡마을로 다시 이주했다. 복룡마을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솔무데기[소나무숲]가 있었는데, 지금은 작은 소(沼)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과거에 극락강에서 모래무지[두루치, 잉엇과의 어종]를 잡아서 솥에 지져 먹기를 즐겨했다. 그러다가 불씨가 집으로 옮겨서 화재가 자주 발생하였다. 한 선각자는 마을에서 화재가 자주 발생한 이유로 임곡동 용진산이 화산(火山)이고, 마을과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마을이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화산과 직접 마주하지 않도록 방비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선각자의 말을 듣고, 마을 앞에 소나무숲을 조성했다. 복룡마을은 소나무숲을 조성한 뒤로 성장하였고, 김녕김씨들은 번창해서 자작일촌(自作一村)을 이룰 수 있었다. 복룡마을은 약 300년 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광주목사 신석유(申錫游)가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서 복구비 전액을 지원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광주목사 신석유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 비석을 세웠다.
[모티프 분석]
「신용동 솔무데기 유래」는 충청도에서 이주한 김녕김씨가 복룡마을에 터를 잡고 살게 된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녕김씨가 복룡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지만 풍수의 결핍으로 마을에 불이 자주 발생하였다. 조력자인 선각자가 나타나서 마을풍수를 비보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양택풍수는 읍성과 마을의 터를 잡을 때에 이용된다. 좋은 터는 좌청룡우백호로 북쪽, 동쪽, 서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며, 남쪽으로 입구와 물이 흘러야 한다. 하지만 이상적인 터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터를 잡고 부족한 부분은 입석이나 나무숲을 조성해서 보완해 준다. 복룡동 솔무데기는 양택풍수와 관련하여 마을터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마을의 지형지세의 결핍으로 인한 인간의 고난, 비범한 조력자의 등장으로 결핍 보완, 안정화된 현재 상태라는 순차적인 서사 모티프의 결합으로 구성된 지명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