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496 |
---|---|
한자 | 無等山-圓光法師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8년 - 「무등산과 원광법사」 『무등산』에 수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무등산과 원광법사」 『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설화|인물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원광법사|무등산 산신령 |
모티프 유형 | 비범한 인물의 신이한 행적|불교와 토착신앙의 대결|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원광법사에 관한 이야기.
[개설]
원광은 신라 진평왕(眞平王)[재위 579~632] 때의 승려이다. 원광은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신라로 돌아와 큰 승려가 되었고,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만들었다. 이야기는 원광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이유와 중국에서 부처님의 가호(加護)로 목숨을 건진 전설로 구성되어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8년에 삼화문화사에서 간행한 『무등산』에 수록되어 있다.
1990년에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무등산과 원광법사」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신라의 젊은 유학자 원광이 중국의 진나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불교를 접하고 불문에 귀의했다. 원광의 학덕은 날로 높아져 이름이 널리 퍼졌다. 원광은 오나라에서 수행을 하던 중에 수나라가 침입하여 참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절의 탑이 불타는 것을 본 수나라의 대장이 불을 끄라고 명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니 원광이 죽기 직전이었고, 수나라의 대장은 원광을 풀어 주라 하였다. 수나라의 대장은 불타는 탑을 보고 와서 원광을 구한 일을 부처님의 계시라 느끼며, 원광이 비범한 인물이라고 여겼다. 원광의 명성은 부처님의 가호로 더욱 유명해졌다.
원광의 명성이 중국 전역으로 퍼지자, 신라 왕실이 원광을 불러들였다. 원광은 황룡사를 관장하다가 99세에 열반에 들었다. 원광의 무덤이 왕족의 능처럼 써지자 명당이라 여긴 백성이 죽은 아이를 그 무덤 옆에 몰래 묻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아이의 무덤을 파 버렸다.
또 다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원광이 젊은 시절 무등산에서 홀로 수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광의 암자 옆에 힘이 세고 기괴한 주술을 쓰는 중이 암자를 지었다. 그 괴승은 주술로 주변에 폐를 끼치고 있었다. 원광은 그 중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자신의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반성하고 더욱 수련에 힘썼다. 그러던 어느 날 원광이 수련을 하던 중에 하늘에서 산신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신령은 원광에게 그 엉터리 중을 산에서 쫓아내라고 하였다. 원광은 엉터리 중을 찾아가 공손하게 산을 떠나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엉터리 중은 반발하며 원광에게 주문을 외웠다. 주술이 원광에게 먹히지 않자, 엉터리 중은 원광의 암자를 무너뜨리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날 밤, 산신령이 원광에게 나타나 엉터리 중을 직접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얼마 후 땅이 흔들리고 엉터리 중의 암자가 폭발하였다. 그리고 다시 산신령이 원광에게 나타나 중국에서 더욱 공부하고 와서 중생을 구하라고 했다. 원광은 무등산 산신령의 덕택으로 중국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왔다. 원광은 돌아오자마자 무등산 산신령을 찾아갔다. 산신령은 원광에게 자신의 신력과 원광의 법력을 합세하여 중생을 구하자고 하였다. 원광은 이에 동의하며 산신령에게 모습을 보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산신령은 첫 새벽에 동쪽 하늘을 보라고 일러주었다. 그때에 하늘을 보니 커다란 팔이 무등산을 감고 있었다. 그날 밤에 원광 앞에 나타난 산신령은 오 년 후 하늘로 돌아갈 것이니 자신의 혼을 편히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시간이 흘러 때가 되자 원광은 산신령을 찾아갔다. 그곳에 가보니 검은 여우가 죽어 있었다. 그러자 원광은 여우의 시체를 수습하여 자신의 암자 옆에 묻어주었다. 그런데 이 여우는 산신령이 변신한 것으로 원광법사의 마음을 시험한 것이었다.
[모티프 분석]
「무등산과 원광법사」의 주요 모티프는 ‘비범한 인물의 신이한 행적’과 ‘불교와 토착신앙의 대립’ 등이다. 원광법사가 법력이 높은 훌륭한 승려였다는 점을 중국에서 유학할 때 부처님의 가호로 살아난 사건과 열반 이후에도 법사의 무덤을 지켜준 벼락, 그리고 제자 원안이 말하는 원광의 후광에 관한 일화 등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또 원광과 무등산 산신령의 이야기에서는 불교와 토착신앙의 관계가 형상화되고 있다. 원광은 산신령의 위력을 확인하고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돌아와서 산신령과 함께 중생을 구제했다. 그러나 신통력이 강했던 산신령도 결국은 죽어서 그 혼이 하늘로 올라가고 마지막에는 검은 여우로 등장한다. 산신령을 토착신앙으로, 원광을 불교로 본다면, 불교 이전에는 토착신앙의 위세가 강했고 어느 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취했으나, 결국은 불법(佛法)이 우세해지는 상황을 형상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