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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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緋緞-現夢-引導-水口路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68년 - 「비단 깔린 현몽으로 인도 받은 수구로」『경양방죽의 역사』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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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비단 깔린 현몽으로 인도받은 수구로」 『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조참보 -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
관련 지명 | 양파정 -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9[사동 177] |
성격 | 설화|지명전설|인물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김방|김방의 할아버지 |
모티프 유형 | 꿈을 통해 얻은 해결책|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경양방죽과 김방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조선 시대 세종 때 광주목사 김방이 꿈에 나타난 할아버지를 통해 경양방죽을 축조하기 위한 수로(水路)를 얻었다는 전설에 얽힌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전라도 광주시 하백동에 거주했던 김용학에게 채록하였으며, 1968년에 간행한 『경양방죽의 역사』에 수록되어 있다.
1990년에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김방이 조선 세종 때에 광주목사로 부임했다. 김방은 광주목사로 오기 전에, 전라도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내면서 벽골제를 확장하여 김제의 만경평야를 옥토(沃土)로 만들었다. 전라도 광주에 부임한 김방이 백성들에게 직접 들은 소원은 광주에도 큰 방죽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방죽이 있으면 가뭄에는 메마른 논에 물을 대는 수원(水源)으로 쓰고, 큰 물이 지면 홍수 피해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양리 아래의 들판이 방죽의 후보지로 선정되었는데, 큰 문제는 무등산 골짜기의 물을 끌어오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기술진들과 날마다 회의를 하여 얻은 최종안은 새 수원지인 석곡에서 작고개를 뚫어 경양까지 물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방은 이 계획이 무리한 것으로 생각했다. 마땅한 대안도 없어서 김방의 고민은 깊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김방의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김방의 할아버지는 김방에게 새로운 물길을 알려 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하였다. 김방이 따라간 곳은 양파정(楊波亭)[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9[사동 177]] 부근의 조참보라는 광주에서 제일 깊은 소(沼)였다. 김방이 그곳에 이르러 주변을 살펴보니 희귀한 비단이 조개보 위에 깔려 있었다.
김방이 할아버지를 따라 걷다 보니 경양에 도착했는데, 그 사이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김방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깨니 이른 새벽이었다. 김방이 조참보로 바로 달려가 보니 초여름 새벽에 때아닌 서리가 하얀 비단처럼 물길을 따라 깔려 있었다. 김방이 이 길을 따라갔더니 경양에 이르렀다. 그래서 김방은 작고개를 뚫으려던 처음 계획을 변경하여 조개보에서부터 수로를 깔아 경양방죽까지 물을 끌어오도록 하였다. 이 새로운 수로를 따라 경양방죽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김방의 도움에 보답한 개미 떼의 보은으로 광주광역시의 경양방죽을 축조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이 전설은 식량 부족 문제를 개미 떼의 보은으로 해결했지만, 경양방죽을 축조할 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경양방죽까지 물을 끌어올 물길을 찾는 것이다. 이 전설에서는 김방의 할아버지가 김방의 꿈에 나타나 물길을 알려 준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꿈에서 문제의 실마리와 해결책을 찾는 것이 주요한 모티프로 제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