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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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證心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8년 - 「증심사」 『무등산』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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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증심사」 『광주의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증심사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 |
관련 지명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설화|전설|사찰창건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한만동|한만동의 어머니|여종의 아들 |
모티프 유형 | 묏자리 잘 써서 잘 살기|풍수로 절터 잡기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증심사(證心寺)에 관한 이야기.
[개설]
신라 때 한만동의 어머니가 생전에 여종을 살려 주었다. 후에 여종의 아들은 중이 되어 풍수를 익혀 한만동의 어머니의 묏자리를 잡아주었다. 한참 뒤, 한만동이 어머니의 묏자리를 옮기려고 땅을 파자 그 노승이 나타나 말렸다. 묏자리를 파내어 동티가 날 것을 막기 위해 절을 세웠는데, 지금의 증심사 자리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8년 삼화문화사에서 간행한 『무등산』에 수록되어 있다.
1990년에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신라 때 전라도 무주에서 한만동의 할아버지가 득이라는 종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한참 시간이 지나 득이는 술에 취해 돌아와 상전에게 욕을 하였다. 다음 날 처벌이 두려웠던 득이는 도망을 쳤고, 대신 그의 처가 광에 갇혔다. 며칠 후 한만동의 어머니가 광에서 흐느껴 울던 득이의 처를 불쌍히 여겨 몰래 풀어주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이후부터 가산(家産)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몇십 년의 시간이 흘러 한만동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한만동이 초상을 치르던 중에 한 중이 들어와 곡을 하였다.
중은 득이의 아들이었는데, 한만동의 어머니에게 은혜를 갚고자 중이 되어 풍수를 익혔고 묏자리를 잡아주었다. 이후 한만동의 집은 점점 넉넉해지고, 그의 후손들이 벼슬에 오르게 되었다. 어느 날 한만동이 그 묏자리가 정말 명당인가 싶어 지관에게 물었다. 한만동이 엉터리 지관의 말대로 묏자리를 파 이장을 하려고 하자 노승이 달려와 말렸다. 노승은 이미 땅을 파서 동티가 날 것이니 액땜을 위해 절을 세우고 불공을 드리라고 하였다. 이때 노승이 잡아준 절터에 한만동이 세운 절이 증심사이다.
[모티프 분석]
증심사 창건이 액땜을 위한 풍수사상을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전설이다. 결핍된 인물인 한만동에게 득이의 아들인 중이 조력자로 나타나 풍수로 묏자리를 잡아주고 가산이 회복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묏자리와 관련한 위기를 겪지만 다시 조력자의 도움으로 해결된다. 증심사가 그 증거물로 제시되는 사찰 창건과 관련한 풍수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