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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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老大洞老大-堂山祭 |
이칭/별칭 | 노대동 노대 도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396-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지현 |
중단 시기/일시 | 1980년대 - 노대동 노대마을 당산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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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 시기/일시 | 1991년 - 노대동 노대마을 당산제 재개 |
의례 장소 | 할아버지 당산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396-1 |
성격 | 마을 신앙|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4일 |
신당/신체 | 느티나무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노대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노대동 노대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 14일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예전에는 '안 당산'과 '바깥 당산' 두 곳에서 당산제를 모셨으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안 당산'이 있는 길을 넓히면서 '안 당산'은 자연스레 '바깥 당산'인 할아버지 당산과 합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당산제를 지낼 때에는 항상 굿을 하는데, 이것은 당산할머니가 흥이 많아 굿을 하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의 형식은 유교식 절차를 따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노대동 노대마을 당산제를 지내게 된 내력은 알 수 없고, 다만 마을에서 대대로 지내왔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지낸다고 한다. 당산할머니의 신체(神體)는 새마을운동 당시 사라졌으나 여전히 할아버지 당산에 합쳐 제사를 모시고 있다. 당산할머니가 억세고 영금[부정]이 있어 신체는 없어졌어도 수백 년 동안의 제가 이어져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노대마을의 당산은 원래 '안 당산'과 '바깥 당산'이 있었다. 기존의 '안 당산'은 철륭 당산 또는 할머니 당산으로 불렸으며, 마을 한가운데 골목 중간에 있었다. 할머니 당산은 마을 뒷산인 분적산(粉積山)[높이 400m]을 향해 지내며 신격은 산신이다. 당산의 신체는 따로 없으나 편평하고 넓은 돌이 있어 이곳에 제물을 진설하여 제를 모셨다. 할머니 당산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길을 넓히면서 단이 없어지고, '바깥 당산'인 할아버지 당산에 합신하여 제를 모시고 있다.
'바깥 당산'의 신격은 삼신으로 전해져 오는데, 이것은 당산제를 지낼 때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를 화주로 선택하고 당산제를 지내고 나면 화주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당산은 마을 도로변 왼쪽에 있으며, 할머니 당산과 합신한 뒤로는 당산할머니 또는 당산할아버지라고 중첩된 의미로 불리고 있다. 신체는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높이 약 15m, 둘레 약 3m이다. 당산나무에서 4m 떨어진 곳에 선바위가 있다. 예전에는 선바위 앞에 편편한 돌로 된 단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단이 있다. 당산나무가 있는 곳에는 약 50평[165.3㎡] 넓이의 시멘트 바닥을 만들고, 하리 높이의 콘크리트 축대를 둘렀다.
당산제를 지낼 때에는 당산나무에 제물을 진설하지 않고 선바위 앞 제단에 진설하여 제사를 지낸다. 이것은 힘이 장사였던 창조할아버지가 분적산 근처에서 영험해 보이는 선바위를 발견하고 들쳐 업어 와서 현재의 자리에 세워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절차]
당산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마을의 운영위원, 통장, 반장, 여자 명예반장, 부인회장 등이 참석하여 화주를 정한다. 화주는 주로 아이가 없으며 젊고 깨끗한 부부로 선정하는데, 보통 삼신이 들지 않은 집, 상을 당하지 않는 집으로 선정한다. 화주는 건화주와 진화주로 나뉘는데, 건화주는 제를 모시는 실질적인 제관으로 제물과 제주를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건화주는 외출을 삼가야 하기 때문에 진화주는 건화주의 바깥 일을 돕는다. 화주로 선정되면 먼저 마을의 공동 샘을 청소하고 물을 퍼낸 다음 뚜껑을 덮고 금줄을 쳐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샘에서 떠온 물로 제주(祭酒)를 빚는다.
축관은 화주처럼 엄격하게 금기하는 것은 따로 없지만, 깨끗한 사람이면서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축문에 한글로 토를 달아 사용한다. 제사 비용은 예전에는 인구전(人口錢)으로 마련하였으나 요즘에는 호구전(戶口錢)으로 거출하는데, 2005년에는 6000원씩 거출하였다. 이렇게 모인 제사 비용으로 제물을 마련하는데, 보통 대추·밤·곶감·돼지머리 등을 구입하고, 매년 제기(祭器)도 따로 장만한다. 제물은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큰 장인 양동시장에서 주로 구입하며 화주들과 책임자들이 함께 장을 보러 간다. 제물의 값은 깎지 않고 부르는 대로 사고, 구입한 제물은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땅에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제물 음식을 장만할 때에는 간을 보지 않고,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으며, 간장과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다. 당산제를 두 곳에서 지낼 때에는 제물을 따로 마련하였으나, 돼지머리는 '바깥 당산'에만 사용하였다고 한다. 건화주가 제물을 장만하면 진화주는 마을 사람들이 먹을 음식과 술을 장만한다. 옛 당산제는 '안 당산'을 먼저 모신 다음 '바깥 당산'을 모셨으나, '바깥 당산'에 합제한 뒤로는 '바깥 당산'에서만 제를 모신다.
정월 열나흗날[음력 1월 14일] 오후 7시 무렵에 마을회관에서 굿을 치며 당산제의 시작을 알린다. 당산제가 시작되면 건화주 집으로 몰려가 깨끗이 마련한 제물을 들고 '바깥 당산' 근처의 선바위 앞 제단에 제물을 차린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초헌, 아헌, 종헌 순으로 진행된다.
제를 지내는 동안 계속 굿을 하다가 독축을 할 때만 잠시 멈춘다. 독축을 마치고 축문을 소지하면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음복을 한 뒤 철상과 헌식을 한다. 깨끗한 한지에 메 두 그릇과 무나물, 삼실, 떡, 돼지고기 등을 손으로 뜯어 싸서 미리 황토를 깔아 준비해 둔 곳에 헌식을 한다. 당산제 헌식 터를 개가 파면 그해는 재수가 좋고, 그렇지 않으면 별로 좋지 않다고 여긴다.
제사가 끝난 뒤 사람들이 소지를 올리면 제사가 끝이 나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복을 한다. 음복을 할 때에는 당산제 떡을 반드시 나누어 먹는데, 이 떡은 무병을 가져오는 신약(神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산제에 참여하지 않은 가족들에게도 이 떡을 가져가서 나누어준다. 당산의 제사가 모두 끝나면 굿패들은 화주 집으로 몰려가 다시 굿을 하면서 당산제를 마무리한다. 그 뒤에는 각 가정에서 정월대보름 차례를 지낸다.
[축문]
노대동 노대마을 당산제에서 대대로 전해오던 축문은 너무 길고 어려워서 2005년 축관이었던 김영권이 간단한 축문을 발견하여, 향교의 유생들에게 자문을 받아 바꾸었다. 그러나 마을 회의를 통해 바꾼 것이 아니어서 당시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2005년 이후 축문
유세차(維歲次) 을유년(乙酉年) 일월(一月) 갑자삭(甲子朔) 십사일(十四日) 정축기현(丁丑基鉉) 동수지신(洞守之神) 유차맹동(維此孟冬) 약시소사(若詩昭事) 감소우(敢昭于) 일동강길(一洞康吉) 만사대통(萬事大通) 백곡풍양(百穀豊穰)
비이뢰신휴(比異賴神休) 비례장성(菲禮將盛) 유신고흠(惟神顧欽) 영전궐거(永奠厥居) 상(尙) 향식(鄕食)
2005년 이전 축문
유세차(維歲次) 신사정월정해삭십사일(辛巳正月丁亥朔十四日) 경자(庚子) 화주(化主)
감소고우(敢昭告于)
오방신위지하(五方神位之下) 천개어자지관어축(天開於子地闢於丑) 인생어인자(生於寅自) 지벽이래(地闢以來)
자유후토씨이주지(自有后土氏而主之) 인생이래자유실가(人生以來自有室家) 이거지즉차기비(而居之則此豈非)
신의어인인의어신(神依於人人依於神) 신인제회자야(神人際會者耶) 유일동방청재신(有曰東方靑宰神)
남재적재신(南宰赤宰神) 서방백재신(西方白宰神) 북방흑재신(北方黑宰神) 중앙황재신(中央黃宰神) 막비오일촌(莫非吾 一村)
오방신위즉(五方神位則) 수어촌인(壽吾村人) 부오촌인(富吾村人) 재어신(在於神) 대재소재지양(大災小災之釀)
소환거환(小患巨患) 지제역재신(之際亦在神) 고자감(故慈敢) 건고우신(虔告于神) 차촌사아일촌(此村使我一村)
남녀노소득면(男女老少得免) 천리지액지강지액(天罹之厄地綱之厄) 살재살지액(殺災殺之厄)
출입재백지책(出入財帛之責) 행객벌지침(行客罰之侵) 금년지액월액일액(今年之厄月厄日厄) 천액만액(千厄萬厄)
관재구설일시소멸(官災口舌一時消滅) 패중득성위중득안(敗中得成危中得安) 병중득차(病中得差)
일촌가도공창(一村家道共彰) 영세안정이신(永世安定而神) 지덕성의(之德成矣) 신지향풍의(神之享豊矣)
차개일체영신(此皆一體靈神) 전좌수향(奠坐受享) 감차수향(敢此修享) 명(暝) 포(脯) 우(佑) 무후재(無後災) 건고상향(虔告尙饗)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집집마다 정월대보름 차례를 지낸 뒤, 솔가지를 꺾어 당산제 헌식 터 주위에 꽂거나 지붕 끝에 꽂는데, 이렇게 하면 벌레[싸레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고춧대와 가짓대, 생대나무로 불을 피우고 자기 나이만큼 가랫불을 넘기도 한다. 당산제를 올린 뒤 사흘째 되는 아침에 건화주는 간단한 음식을 장만하여 당산나무에 가서 삼우제를 지낸 뒤에 당산 주위의 금줄을 걷는다. 예전에는 금줄을 소각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소각하지 않고 당산나무에 감아놓는다. 음력 2월 초하루가 되면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여 결산보고를 하고 점심을 함께 먹는다. 이때, 회의에서는 당산제 결산과 더불어 마을 일 년 예산을 세우고, 공동으로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기도 한다.
[현황]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는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14일에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