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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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溪洞長久村-堂山祭 |
이칭/별칭 | 월계동 장구촌마을 동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부유진 |
중단 시기/일시 | 1945년 8.15광복 이후 - 월계동 장구촌마을 당산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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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장구촌마을 뒤 |
성격 | 마을 공동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열나흗날 밤 |
신당/신체 | 할아버지당산[소나무]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장구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월계동 장구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장구촌마을의 할아버지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장구촌마을은 조선 중기에 청송심씨(靑松沈氏) 등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되었다. 당산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 지냈던 것으로 보이며, 8.15광복 이후 전승이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신당/신체의 형태]
장구촌마을의 당산은 할아버지당산 한 곳으로, 마을 뒤에 있는 소나무가 신체 역할을 하였는데, 1960년대에 고사(枯死)하였다.
[절차]
월계동 장구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에 마을회의를 열어 화주 1명, 제관 1명, 축관 1명 등 3명을 선출한다. 특히 화주는 선정된 날부터 상가 등 궂은 곳을 출입해서는 안 되며, 제사가 끝날 때까지 소변을 보면 세수를 해야 하고, 대변을 보면 목욕 후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제비(祭費)는 가족 구성원 수대로 걷는 '인구전'으로 마련하였는데, 태아의 몫까지 자진해서 냈다. 제물(祭物)은 화주와 마을 사람 2명이 함께 구입하는데, 값을 깎아서는 안 된다. 제기(祭器)는 매년 새로 구입하며 제사가 끝나면 화주가 소유한다. 제수(祭需)는 화주집에서 준비하며, 청결에 각별히 유의한다. 음식에 고춧가루나 마늘 등은 넣지 않고 간단히 소금 간만 하며, 맛도 보지 않는다. 정월 12일이 되면 마을 입구, 당산 주변, 유사집 앞에 금줄을 쳐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금토는 제일(祭日) 아침 일찍 금줄을 친 주변에 뿌린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 무렵이 되면 농악을 쳐서 마을 사람들을 모은다. 밤 10시에 화주집으로 가서 제물을 가지고 할아버지당산으로 향한다. 절은 제관들만 할 수 있고, 농악대는 허리만 숙여 절을 한다. 참관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부정한 사람은 오지 못한다. 제가 끝나면 제관들만 간단히 음복을 한 후 당산나무 밑에 헌식을 한다. 이후 진설한 음식을 마을 앞으로 가져오고, 화주집에서도 장만한 음식을 내어 놓는다.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새 어울린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읊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고 정월 대보름날부터 그믐날까지 마당밟이가 이어진다. 먼저 윗샘, 아랫샘에서 굿을 치고, 화주-제관-축관의 집을 차례로 방문한다. 이후 집집마다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하는데 각 가정에서는 음식, 술, 쌀, 돈 등을 내놓는다. 이를 모아 굿물을 구입하고 마을 공동 자금으로 사용한다.
[현황]
월계동 장구촌마을 당산제는 8.15광복 이후 전승이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