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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동 서작마을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43
한자 牛山洞西作-堂山祭
이칭/별칭 우산동 서작마을 동제,우산동 서작마을 도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부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90년대 말 - 우산동 서작마을 당산제 중단
재개 시기/일시 2000년대 초 - 우산동 서작마을 당산제 재개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서작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서작마을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흙무덤]|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서작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우산동 서작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서작마을의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1912년 마을 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일대는 우산면 동작리, 서작리, 신기리, 향약리, 당사리, 마지면 운림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산동으로 통합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당산제는 1990년대까지 자연마을별로 모셔졌다. 이후 도시 개발 여파로 자연마을이 와해되면서 우산동 당산제로 통합 운영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서작마을에는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 두 곳이 있었다. 할아버지당산은 마을 뒤편 고갯마루의 밭둑에 있는 흙무덤인데 당산제의 제단이자 헌식터로 사용되었다. 당산 옆에는 팽나무 세 그루[고씨가 심었다 하여 '고정자(高亭子)'라고도 한다.]가 있는데, 수령은 500년이 넘는다고 한다. 할머니당산은 마을 앞의 느티나무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벌목되었고, 그 후에 주변에 있던 작은 입석에 모셨으나 이마저도 없어졌으며, 마을회관 앞 길옆에 작은 흙무덤을 만들어 할머니당산으로 모셨다 하나 현재는 흔적이 없다. 원래 서작과 동작은 한 마을로 서작의 할아버지당산과 동작의 할머니당산을 시간만 달리하여 모셨으나, 동작과 서작이 독자적인 당산제로 분화되면서 서작에 할머니당산이 새로이 모셔지게 되었다고 한다.

[절차]

우산동 서작마을 당산제는 정월 3일경 마을회의를 열어 화주 1명과 축관 1명을 제관(祭官)으로 선정한다. 화주는 제물(祭物)을 장만하는 사람으로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이 잘 맞아야 하고, 집안에 궂은 일이 없는 사람으로 정한다. 축관도 화주의 몸가짐에 준한다. 일제강점기까지는 제비(祭費)를 각 가정의 남자 수만큼 할당하였다. 8.15 해방 이후에는 마을 공동 소유의 토지를 임대하여 비용을 충당하다가, 토지를 팔아 새로 지은 마을회관을 임대하여 제비를 마련하였다. 제물은 화주집에서 준비하는데, 제일(祭日) 아침에 장에 가서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제물을 살 때에는 값을 깎지 않으며, 제기(祭器)는 매년 새로 구입하여 제사 이후 화주가 소유한다. 화주는 제물을 만들기 전 목욕재계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는다. 제일 3일 전에는 당산 주변, 마을 골목, 화주집 앞, 공동 우물 등에 금줄을 친다. 제일 아침에는 금줄이 있는 곳에 금토를 깔아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정월 열나흗날 초저녁에 화주 부부가 공동 우물에서 목욕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화주 부부는 메와 국을 끓여 마지막 준비를 한다. 밤 11시부터 12시 사이에 할아버지당산에 먼저 올라가 제사를 지낸다. 화주 부부와 축관 등이 제물을 들고 앞서 가면 굿을 치는 사람들이 뒤따라가며 들당산굿을 친다. 당산에 오르면 축관의 지시에 따라 화주 부부가 제물을 진설한다. 진설이 끝나면 굿을 그치고 화주 부부가 분향 재배를 올리고 축관이 독축을 한다. 독축이 끝나면 다시 재배를 하고 사신배를 올려 굿을 마친다. 이후 화주는 마을을 대표하여 소지를 올린다. 소지가 끝나고 나면 제단에 차렸던 모든 제물을 깨끗한 백지로 싸서 땅에 묻는 헌식을 한다. 제상(祭床)에 올렸던 음식은 일절 음복하지 않고 모두 묻는다. 할아버지당산의 제사가 끝나면 굿을 치며 화주집으로 내려와 한 시간 가량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논다. 이후 할머니당산으로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차(祭次)는 할아버지당산과 같지만, 돼지머리가 제수에 포함되는 것과 독축이 생략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당산나무 옆에 제물을 헌식한 후 제사의 끝을 알리는 나발을 불면 각 가정에서는 조상에게 메[제사 때 신위(神位) 앞에 놓는 밥]를 올린다.

[축문]

우산동 서작마을 당산제는 독축을 할 때 촌제 축문을 읽는데, 이외에는 육갑(六甲)을 6회 읽는다. 마을 사람 모두의 성명과 사주를 읊을 수 없기 때문에 육갑으로 대신한 것이다.

[부대 행사]

할머니당산에 제사를 올린 후 미리 준비한 '허천밥'을 가지고 마을 앞 개울가를 돌아다니면서 흩뿌리는데, 농악대가 그 뒤를 따라 굿을 친다. 당산제를 지내고 사흘 뒤에는 '삼우날'이라 하여 마을 주민이 화주집에 모여 화주가 장만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마을회의를 하는데, 화주의 노고를 치하하고 당산제의 결산, 마을의 대소사 등을 의논하고 정한다.

[현황]

1990년대까지 우산동의 자연마을별로 서작마을 당산제가 모셔졌으나, 이후 자연마을이 와해되면서 우산동 당산제로 통합 운영되고 있다. 우산동 당산제는 '우산동 정월대보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광산구의 후원을 통해 개최되고 있는데, '정월대보름 우산동 주민화합 민속축제', '우산골 달맞이 축제' 등의 세부 행사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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