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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26
한자 淸風洞新村-堂山祭
이칭/별칭 청풍동 신촌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50년 6.25전쟁 이후 - 청풍동 신촌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어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신촌마을 입구 개울가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사흗날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신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에 모셨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청풍동 신촌마을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신촌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당산에서 지내던 공동 제의로, 6.25전쟁 이후 중단되었다.

[연원 및 변천]

신촌마을은 본래 등촌마을에 속해 있었으나 그 옆에 새로 마을을 형성하여 '신촌'이라고 불렸다. 약 500여 년 전에 남평문씨(南平文氏)행주기씨(幸州 奇氏)가 터를 잡아서 마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으나 현재는 무돌길 제1길 끝에 해당되고, 지질공원 특화마을[지오빌리지 청풍마을]로 지정되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촌 당산제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 해 비가 많이 와서 마을 보가 무너져 마을이 떠내려갈 지경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정자나무에 당산할아버지를 부르며 고사를 지냈다. 그러자 정자나무에서 흰 노인이 나와 물이 넘쳐흐르는 보를 둘로 갈라 물을 개울로 흘러가게 하였다고 한다. 이후 매년 그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청풍동 신촌마을 입구의 개울가에 있는 세 그루의 나무 중 가장 큰 수령 400여 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할아버지당산이다. 현재 광주광역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마을인 만큼 잘 정돈되어 있다. 당산나무 옆에는 마을 정자와 수구막이[장승]로 세워진 입석이 함께 있다.

[절차]

청풍동 신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사흘 무렵에 마을회의를 열어 제관 3명, 축관 1명, 유사 1명을 선정한다. 축관과 제관은 마을 어른 중에 학식도 있고 공이 있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유사(有司)[당산제나 모임의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는 제물(祭物) 장만을 위하여 내외가 사는 집 중에 액운이 없는 가구로 선정한다. 유사 내외는 제를 지내기 일 주일 전부터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깨끗하게 지낸다. 제물은 작년 마당밟이를 통해 걷은 기금을 사용하며, 삼실과, 산채, 명태, 돼지머리 등으로 준비한다. 정월 초열흘이 되면 마을 입구, 당산 주위, 화주집 등에 금줄을 치고 금토를 놓아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 8~9시 무렵 농악대는 농악을 치고 정결한 마을 사람이 제물을 들고 할아버지당산으로 올라간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분향→강신→초헌→독축→소지→아헌→종헌→소지→헌식→음복' 순으로 진행하였다. 제물을 조금씩 떼어 흰 종이에 싸서 당산나무 옆 헌식터에 묻고, 한해의 무병을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은 시루떡을 조금씩 음복한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고 정월대보름이 되면 샘굿을 시작으로 마을 각 집을 돌아다니며 마당밟이를 하고, 여기서 나온 돈을 모아 다음 당산제의 경비로 사용한다. 또한 등촌마을과 함께 위뜸과 아랫뜸[신촌마을]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고, 마을 여자들은 그네타기를 하기도 하였다.

[현황]

청풍동 신촌마을 당산제6.25전쟁 이후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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