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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주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282
한자 日本式住宅
영어공식명칭 Japanese-Style House
이칭/별칭 일식 주택,일본식 가옥,적산 가옥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영미

[정의]

광주광역시에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일본식 목조 주택.

[개설]

우리나라에 일본식 주택이 유입되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즉, 일제강점기 초기에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일본에서 운반한 건축 자재와 기술로 일본식 주택을 그대로 지은 경우와, 일본인 영향을 받은 조선인들이 일본식 주택 혹은 일본식, 양식, 한식의 절충 형태를 답습, 모방하는 경우로 구분될 수 있다.

박용환은 『한국 근대 주거론』에서 일본식 주택의 영향을 두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먼저 개항기부터 한일늑약[1910년]의 시기로 조선에 먼저 들어온 일본인이 조선식 주택에서 생활하다 통감부 설치 이후인 1905년(고종 42)부터 본격적으로 자신들이 생활할 일본식 주택을 지으면서 유입이 본격화되었다. 다음으로 1910년(순종 4) 이후에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수가 급증하면서 일본식 주택이 본격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주택들은 일제에 의하여 조선 주택에 대한 개선 움직임과 함께, 일본과 조선의 혼합형 주택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1920년대 일본 본토에서 ‘서양풍의 문화 주택[서양식이 가미된 일본식 주택의 변형]’이 출현하였다.

오래전부터 호남의 행정도시로 발달한 광주광역시는 중심지인 금남로 1가, 충장로 1가를 비롯하여 시 전역에 걸쳐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개항도시 목포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항만 노동자나 도시 상인의 서민 주거였던 연립형 주거가 산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는 도시개발로 인하여 소수의 단독형 주거만이 남아 있다. YMCA 옆 일본식 주택인 '김용덕가옥'이 2007년 철거되어 현재 주차장 및 상가로 이용되고 있는 것처럼, 현재는 도시재개발로 인하여 소수의 단독주택만이 남아 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광주광역시의 주택 보급률이 하락하였으며, 주택 부족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주택 부족 문제와 전쟁 이후의 복구 차원에서 융자주택 등의 각종 공영주택이 건설되었고, 민간 부문에서도 여러 주택이 건설되어 주택 보급률은 상승하게 되었다. 이 당시에 지어진 주택 구조의 유형은 한식, 목조, 일식목조, 흙블럭, 벽돌 등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한식 목조주택이 4만 5440호로 전체의 79.1%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일본식 목조 건물이 12.4%로 나타나, 6.25전쟁 이후에도 일본식 건물들이 꽤 많이 건설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식 주택 분포]

광주광역시의 일제강점기 일본식 주택은 오용가옥[장동 84-2번지], 김봉도가옥[장동 83-5번지], 유중종 가옥[장동 80-3번지], 김인수 가옥[장동 82-2번지], 최귀실 가옥[불로동 154번지], 김형순 가옥[불로동 151번지], 김용덕 가옥[금남로 1가 19-8번지] 등 다수의 건물이 장동, 동명동, 불로동, 대의동, 금남로 일대에 지어졌다.

[일본식 주택 특징]

일제강점기에 조선에 사는 일본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반 양식, 반 일식의 가옥을 비롯하여 일본식 주택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일본보다 습기가 적고 겨울에는 일본보다 추워서 일식 주택은 방한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다다미 구조에 온돌을 설치하고 벽은 두껍게, 창호의 면적은 줄이는 식으로 일본식 주택에 조선의 주택 양식이 절충되고 혼합되는 양상이 등장한다.

광주 지역의 일본식 주택의 공간 특징을 살펴보면, 전통 주거의 경우 대문과 마당이 모든 동선의 중심이었다면, 일본식 주거는 주출입 방식이 대문을 거쳐 현관으로 출입하는 형태의 주거가 대부분이었으나, 일부에서는 전통 주거처럼 대문과 마당을 통하여 출입하는 방식이 나타났다. 한편 외부 공간은 전통 주거의 경우, 중정형으로서 다양한 주생활 공간의 연장이었다면, 일본식 주택의 경우 전정과 후정으로 나뉘어져 있어 외부 공간은 조망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 구성은 전통 주거의 마당보다는 조망용 정원을 즐겨 사용하였기 때문에, 주거의 진입도 마당을 통하지 않고 바로 현관으로 진입하였다. 이러한 생활 방식의 차이로 일본식 주택의 경우 마당 도입이라는 계승과 변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일본식 주거는 일본과 한국의 주생활 양식의 차이에 따라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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