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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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一皮革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선봉규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었던 가죽 제품 제조업체.
[개설]
남일피혁은 사양산업에 접어들었던 피혁사업을 나일론 등의 신소재 개발로 회생시켰으며, 일본과의 기술 제휴를 통한 품질 향상으로 1983년 광주 전남 최초로 1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하였다.
[설립 목적]
가죽 제품의 기술 개발 및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남일피혁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내려온 회사로 처음에는 광주시 동구 학동에 있었다. 1970년대 나일론 등의 신소재 옷감이 등장하면서 피혁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나, 설립자인 박용훈은 사업을 인수하면서 담양군 고서면으로 부지를 이전하고 일본 회사와의 기술 제휴를 시작으로 사업을 활성화시켰다. 전성기 때에는 직원이 350여 명 이상이었고, 1983년에는 광주 전남 최초로 1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하였다. 당시 남일피혁의 생산량은 전국 3위였다. 또한, 당시 공장 부지가 1,700평[5,619m²]이었는데 그후 2만 평[6만 6115m²]]으로 확장하였다.
남일피역의 제품은 다국적 스포츠의류 업체[아디다스, 리복 등]에서 최고의 품질로 선정하였으며, 당시 남일피혁의 가죽만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1997년 IMF 이후 금리가 급등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화의(和議)[파산 예방을 목적으로 채무 정리에 대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맺는 강제 계약] 개시 및 회사 재산 보전 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를 통해 기업 도산을 막기 위하여 자구 경영을 해왔지만 법원이 화의 취소 결정을 내린 후 2003년 파산에 이르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남일피혁은 가죽, 가방, 신발, 마구류 제조, 수출입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