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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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良瓜洞六六詩契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서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었던 협동 단체.
[설립 목적]
양과동 육육시계(良瓜洞 六六詩契)는 시(詩)나 문장(文章)을 지어 서로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변천]
양과동 육육시계는 남애(南涯) 고유상(高維相)의 주도로 이장·양과리에 거주하는 노년층 36명이 모여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에 민족적 울분을 글로 삭혀 보고자 모였으며,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양과동계의 시문에 관심 있는 일부 계원들이 모여 만든 파생 조직 또는 별도의 부가 조직이었다. 육육시계는 1960년대 말 계원들의 고령화로 소멸되었다.
[내용]
계원의 자격은 이장·양과리 거주 노인으로서 특별한 자격 제한은 없었다. 다만, 최소 압운(押韻)에 맞춰 한시(漢詩) 한 수를 지어내 읊을 수 있어야 한다.
창계(創契) 시 계원은 36명이었고, 17명이 추가 입계하였다. 계원의 추가 입계는 총회의 인준과 입계금 납부로 이루어지고, 3회 이상 불참하거나 거주지 변동 시에는 탈계시키며 계금은 반환되지 않는다.
양과동 육육시계의 정기 총회는 매년 한 차례 개최되었으며, 시강회(詩講會)는 음력 4월[정기 총회와 병행]과 9월에 실시하였다. 행사의 구체적인 날짜는 직전 모임에서 계원들의 의견을 모아 정하였다.
각 계원들은 총회에서 안건 토의를 한 후 압운에 맞춰 시문을 지었다. 지어진 시문은 한 곳에 수합하여 합평(合評) 및 토론을 벌였고, 잘 지어진 글은 여러 계원들 앞에서 가락을 넣어 읊기도 하였다.
상조 기능은 계원 사망 시에 전 계원이 반드시 참례(參禮)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부조(扶助)를 하였다. 계에서는 최대의 애도를 표하는 치제문(致祭文)을 지었다.
[의의와 평가]
양과동 육육시계는 선조들의 정신적 여유 속에서 멋과 풍류를 즐겼던 시계(詩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