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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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漆石洞喪賻契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서 |
설립 시기/일시 | 1965년 - 칠석동 상부계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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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칠석동 상부계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
성격 | 상부계 |
설립자 | 유근춘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 있는 협동 단체.
[개설]
칠석동 상부계는 초상이 났을 때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 1965년에 조직한 계이다. 창계 당시 선대들의 상부계인 위친계가 이미 존재했지만, 젊은 주민들이 부모, 형 등을 모시려면 새로운 계가 필요하다면서 유근춘 등이 주도하여 결성하였다. 창계 당시 계원들은 마을에 거주하는 30대 전후의 남자 세대주 40명이었다. 이후로 가입 희망자는 일부 금액을 납부하고 총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광주광역시의 남구 칠석동은 가구 수 200여 호의 비교적 큰 마을이다. 무형문화재 '광주 칠석고싸움놀이'를 연행하고, 마을 앞에는 조선 시대 초 문관 김문발(金文發)[1359~1418]이 세운 부용정(芙蓉亭)[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이 있어 우리나라 초기 향약이 시범적으로 실시된 마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상부계만 해도, 큰 상부계, 중간 상부계, 작은 상부계로 나뉘어 있을 정도다. 큰 상부계는 60대와 70대, 중간 상부계는 50대, 작은 상부계는 40대 전후의 연령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계의 자금은 1990년도 이전까지 연 5만 원씩의 계비를 걷어 비용으로 사용하고 남은 금액을 적립하였다. 창계 때 백미 2말로 시작하여, 계원과 마을 주민들에게 대여곡을 제공하는 새꺼리를 통해 식리하였다. 또한 벼 베기, 보리 베기 등의 공동 작업도 하면서, 1972년에는 논을 구입했을 정도로 늘어났다. 구입한 논은 계원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며, 수입금으로 계 운영비와 부조 금품 비용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통장에 넣어 관리하고 있다. 1996년에 이르러 연례 계비도 없어졌다.
계원이 부모상을 당하면 부조 물품으로 상여 1채, 돼지 1두, 탁주 1섬을 지급받았다. 나머지 계원들은 출상 때까지, 1980년도 이전에는 3일을 참석해야 했고, 이후에는 최소 하루는 참석하도록 하고 있다. 규약의 개정이나 폐지는 출석 인원의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이루어진다. 총회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이후 계장이 계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날짜를 정하고 연락한다.
[의의와 평가]
연령대에 따라 큰 상부계, 중간 상부계, 작은 상부계로 나뉘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정 기간 동안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는 등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한 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