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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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Hong Inpy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60년 10월 1일 - 홍인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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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15~21일 - 홍인표 5.18민주화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홍인표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활동지 | 광천주조장 -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남동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화랑 근무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홍인표[1960~1980]는 1980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달아오르던 민주화 시위에 5월 15일경부터 참여하였다. 5월 18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시에는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던 때, 홍인표는 형의 심부름을 나와 남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남동] 광천주조장을 지나던 중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홍인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정도 서울특별시에서 생활하다가 형이 운영하던 화랑에서 일을 돕고자 1980년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왔다. 그해 5월 민주화 열기가 달아오르자 홍인표는 형의 만류에도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젊은 놈이 어떻게 그냥 앉아 있겠냐"며 5월 15일경부터 시위에 참여하였다. 5월 18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계엄군이 광주시에 투입되어 광주 시민들을 대상으로 만행을 저질렀다.
5월 21일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하였다. 그날 홍인표는 형의 심부름으로 그림 배달을 위해 시내로 나와 남동에 있는 광천주조장을 지나던 중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좌측 전두골 함몰, 뇌실질 파열상 등 총상이었다.
홍인표의 사망을 모르고 있던 가족들은 형의 친구로부터 걸려 온 전화에서 전라남도청 앞 상무관에 홍인표의 시신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족들은 상무관에서 홍인표의 시신을 수습하여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하였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64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