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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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Hong Seonggy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47년 10월 10일 - 홍성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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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18~20일 - 홍성규 5.18민주화운동 참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5월 20일 - 홍성규 사망 추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3년 - 5.18구묘지 안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6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학교|수학지 | 조선대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필문대로 309[서석동 375] |
활동지 | 음악감상실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1가 |
활동지 | 전남대학교 병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42[학동 8]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음악감상실 운영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홍성규[1947~?]는 조선대학교 출신으로 1980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1가[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1가]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평소에 대학생들과 교류가 많아 불안한 시국을 잘 알고 있던 홍성규는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5월 20일 시위 중 계엄군에게 머리를 구타당한 뒤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홍성규는 1980년 당시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홍성규는 시국을 걱정하는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을 자주 접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세가 얼마나 불안한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홍성규의 모교인 조선대학교의 후배들과 광주YMCA 독서회의 학생들과 친분이 있었다.
홍성규는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였다. 5월 20일 홍성규는 계엄군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뒤 시민들에 의해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다. 후두부를 강하게 맞아 수술이 필요하였던 홍성규는 머리를 깎고 수술 순서를 기다렸지만, 순서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사망 원인은 두부 손상 등 타박상이었다.
가족들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홍성규를 찾기 위해 주요 병원과 시내 곳곳을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다. 5월 23일 아침, 집으로 찾아온 학생들로부터 홍성규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시신이 있다는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간 가족들은 병원 뒤뜰 맨땅에 놓여 있는 시신들 사이에서 홍성규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시신은 추모식을 위해 전라남도청 분수대를 거쳐 상무관으로 옮겨졌다. 부검을 마친 홍성규의 시신은 선산에 안장되었다가 1983년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으로 이장되었다. 1997년 6월 국립5.18민주묘지에 새롭게 안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63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