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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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Han Yeongg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50년 9월 7일 - 한영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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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한영길 5.18민주화운동 참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한영길 사망 추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활동지 | 광주지방고용노동청 - 광주광역시 북구 첨단과기로208번길 43[오룡동 1110-13] |
활동지 |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화천기공 근로자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한영길[1950~?]은 1980년 5월 21일 5.18민주화운동 시위에서 시민군 트럭에 탑승해 있던 것이 목격되었다. 그 뒤 가족들이 찾아 헤맸으나 두개골 총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보지 못하였다.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에 대한 지문 감식 결과, 채수길의 시신이 확인된 뒤에 가족들은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
[활동 사항]
한영길은 1980년 당시 서울특별시에서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화천기공 근로자로 일하고 있었다. 한영길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친구가 계엄군의 구타로 사망한 것을 본 뒤 시위에 참여하였다. 한영길은 시민군의 트럭에 올라타 광주 시내를 돌면서 시위대과 함께 계엄군의 만행에 대항하였다.
5월 21일 한영길을 찾아다니던 작은아버지는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지금의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서석동으로 내려오는 트럭에서 시민들의 투쟁 참여를 독려하고 있던 한영길을 발견하고 집에 데려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한영길은 친구들만 두고 갈 수 없다며 작은아버지를 돌려보냈고, 그날 저녁 한영길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아침이 되자 전라남도청과 상무관, 주요 병원 등을 돌며 한영길을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한영길은 가족들이 다녀간 전라남도청에 시신이 된 채 누워 있었다. 사망 원인은 두개골 맹관 총상과 두정부 맹관 총상이었다.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가족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한참 뒤에 망월묘지공원에 신원 미상의 시신에 대한 지문 감식 결과, 한영길로 추정되는 시신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족들은 한영길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고, 젊은 나이에 사망한 한영길을 위해 영혼 결혼식을 올려 주었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2-12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