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57 |
---|---|
영어공식명칭 | Jo Daeh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47년 2월 9일 - 조대훈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조대훈 5.18민주화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조대훈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5월 29일 - 5.18구묘지 안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활동지 |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
활동지 |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 시민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조대훈[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조대훈은 1980년 5월 21일 오전 11시쯤 전라남도 광주시 광천동[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에서 친구와 함께 시위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많은 시민들이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하며 계엄 해제를 외쳤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누문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에서 내리기도 하고 금남로에서 내리기도 하였다. 조대훈의 친구가 전라남도청까지 가지 말고 누문동이나 금남로 근처에서 내리자고 하였지만, 조대훈은 "기왕에 나온 걸음이니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도청까지 나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전라남도청까지 갔다. 오후 1시경이 되자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시위 대열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하였다. 이때 조대훈은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좌흉부 관통 등으로 인한 총상이었다.
오전에 집을 나간 남편에게 밤 늦도록 아무 연락이 없어 걱정하던 아내는 조대훈의 친구로부터 남편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내는 조대훈의 형에게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형은 조대훈을 찾기 위해 광주 시내 주요 병원을 돌아다녔다. 형은 구 적십자병원[서남대학교 병원으로 변경되었다가 2018년 2월 폐업] 영안실에서 심하게 부패된 조대훈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가족들은 조대훈의 시신을 입관하고 전라남도청으로 옮겼다가 5월 29일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하였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56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