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56 |
---|---|
영어공식명칭 | Jeong Hakg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50년 8월 30일 - 정학근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정학근 5.18민주화운동 시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정학근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활동지 |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 광주광역시 서구 화운로 211[내방동 200-11] |
활동지 |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 시민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정학근[195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80년 3월 정학근은 경기도 인천시 북구[지금의 인천광역시 부평구]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광주시로 이사를 왔다. 19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시에서 계엄군의 만행이 계속되자 정학근은 아내를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포에 있는 고모 댁에 보냈다. 정학근은 아내로부터 곧바로 내려오라는 권유를 받았면서도 광주시에 남았고, 아내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정학근은 누나가 살고 있는 광주시 대촌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으로 향하던 중 아시아자동차[아세아자동차라고도 하며, 1976년 기아자동차에서 인수함] 광주공장에서 나오는 시위 차량의 시민군들이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자 시위 차량에 올라탔다.
당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정학근은 5월 21일 전라남도청 앞에서 우측 흉부에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그 뒤 전라남도청 부근 상무관에 안치되었다가 가족이 나타나지 않자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으로 옮겨져 아무런 장례 절차 없이 매장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이 끝난 뒤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이 정학근의 시신을 확인하였는데, 이미 부패가 심해 알아볼 수 없었다. 정학근의 아내도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달려왔지만, 이미 장례를 치른 뒤였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54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