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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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Jeong Ming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55년 3월 4일 - 정민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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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정민구 시민군으로 활동하며 전라남도 광주시 외곽 순찰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2일 - 정민구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활동지 | 광주역 -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235[중흥동 611-8] |
활동지 | 전남대학교 병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42[학동 8]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일신방직 전기기사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정민구[1955~1980]는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 광주시 외곽을 순찰하던 중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정민구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일신방직에서 전기기사로 일하고 있었으며,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5월 21일 정민구는 광주역 등지에서 시위에 참여하면서 시민군으로 활동하였다. 광주역에서 시민군의 차에 올라탄 정민구는 전라남도 광주시 외곽 지역의 순찰을 맡았다. 5월 22일 새벽 순찰을 하던 정민구는 계엄군의 총탄에 맞았고, 총알은 어깨를 관통하였다. 정민구는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응급처치 중 숨을 거두었다. 광주지방검찰청의 검시 결과에는 사인이 총상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기록되어 있다.
가족들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정민구를 찾기 위해 광주역과 부근의 병원들을 돌아다녔다. 아버지가 전남대학교 병원에 갔을 때, 광목천으로 덮인 시신들 가슴에 놓인 이름표 중 '정민구'를 보았다. 하지만 시신의 훼손이 심해 바로 확인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나머지 가족과 정민구의 친구들도 불렀다. 가족과 친구들이 확인한 결과 정민구의 시신과 이름표가 일치하였다. 전라남도청 앞 상무관으로 옮겨졌고, 5.18민주화운동이 끝나고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되었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90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