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53
영어공식명칭 Jeon Yeongji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62년 2월 5일연표보기 - 전영진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80년 - 전영진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21일 - 전영진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 앞에서 계엄군으로부터 총격을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80년 5월 21일연표보기 - 전영진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6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학교|수학지 광주대동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서구 전평길 50[매월동 521-4]지도보기
활동지 광주지방고용노동청 - 광주광역시 북구 첨단과기로208번길 43[오룡동 1110-13]지도보기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지도보기
성격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성별
대표 경력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가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사망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전영진[1962~1980]은 5월 21일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옛 전라남도청으로 향하였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오후 1시경 전라남도청 근처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지금의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있던 전영진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전영진은 1980년 당시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전영진은 수업 단축과 휴교령이 내려지자, 5월 19일 과외 수업을 받고 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길에서 마주친 계엄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전영진은 자신도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말했으나 어머니의 완강한 만류로 5월 20일에는 집에 있었다.

5월 21일, 전영진은 아침밥을 먹고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밖으로 나갔다. 전영진전라남도청으로 향하였고, 집단 발포가 있었던 오후 1시경 전라남도청 근처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 앞에 있었던 전영진은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우측 두부 총상이었다. 전영진광주기독병원으로 옮겨졌고, 시위 현장에서 옆에 있었던 친구가 전영진의 집에 와서 소식을 전하였다.

가족들은 광주기독병원 영안실에서 전영진의 시신을 확인한 뒤 입관하였다. 전라남도청상무관으로 옮겨졌고, 항쟁이 끝나고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되었다. 1997년 6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51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