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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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Yang Inseop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47년 1월 2일 - 양인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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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양인섭 금남로 시위대에 합류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양인섭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5월 30일 - 5.18구묘지에 안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6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거주|이주지 |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 시민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양인섭[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에 참여하였다가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양인섭은 광주공원 앞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서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에 살던 주민이다. 5월 18일 이후 광주시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5월 21일 금남로[광주광역시 동구 관내 명예도로로 지정된 유네스코 민주인권로]의 시위 현장으로 향하였다.
집을 나선 양인섭이 늦은 저녁까지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아내는 양인섭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으나 남편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양인섭의 아내는 전라남도청에 사망자 시신을 모아놓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라남도청 지하실에서 남편인 양인섭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양인섭은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머리 뒷부분에 구멍이 난 채로 사망한 상태였다. 그러나 검안서에 기재된 사망 원인은 타박상에 의한 후두부 우측 함몰이었다.
양인섭은 5.18민주화운동이 끝난 직후인 5월 30일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되었다. 1997년 6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37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