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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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An Byeongt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56년 11월 24일 - 안병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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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안병태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 집단 사격을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안병태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전라남도 승주군 공동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활동지 |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목공소 근로자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안병태[1956~1980]는 1980년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 시위 현장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머리에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는 목공소에서 근무하였던 안병태는 계엄군의 만행이 심해지면서 직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5월 20일 안병태는 친구와 함께 시위에 참여하고자 하였으나 아버지의 만류로 집에 있었다.
다음날 전라남도청 앞에서 시민 궐기대회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병태는 재차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살인마들을 몰아내기 위해 나가봐야 한다."며 친구와 함께 집을 나선 뒤 전라남도청 앞 분수대를 향해 갔다.
5월 21일 오후 1시경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를 하였다. 그 현장에 있었던 안병태는 머리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병태의 죽음을 알렸다. 소식을 듣고 형이 광주기독병원으로 가서 안병태의 시신을 확인하였다.
다음날인 5월 22일에는 안병태의 시신이 전라남도청으로 옮겨져 이미 다른 시신들과 함께 입관이 끝났다. 이 사실을 모르는 가족들은 광주기독병원을 찾았다가 전라남도청으로 가서 관을 열어 자식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안병태는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되었는데, 몇 년 뒤 경찰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전라남도 승주군[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공동묘지로 이장하였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36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