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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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ak Geumh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63년 7월 13일 - 박금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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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80년 - 박금희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박금희 광주기독병원에서 부상자 수혈을 위한 헌혈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박금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8년 - 제1회 민족극 한마당에서 연극 「금희의 오월」 초연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6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학교|수학지 |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설죽로 433[삼각동 479-1] |
활동지 | 광주기독병원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로 37[양림동 264]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박금희[1963~1980]는 1980년 5월 당시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지금의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5월 21일 부상자 수혈을 위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나온 뒤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80년 5월 21일 전라남도 광주시에서는 계엄군의 만행으로 많은 수의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수혈에 필요한 혈액이 필요합니다."라고 헌혈 홍보를 하는 차량 방송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박금희는 5월 21일 어머니와 식사를 마친 뒤 혼자 집을 나서서 부상자들을 돕고자 광주시 서구 양림동에 있는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였다. 헌혈 후 병원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엄군의 총격을 당해 죽음을 맞았다.
가족들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박금희를 찾아 나섰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는데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사망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은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선생님과 함께 광주기독병원 영안실로 갔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어 손목시계를 보고 박금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들은 박금희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주고 싶었으나, 군인들이 박금희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바람에 묻을 수가 없었다.
박금희의 시신은 광주기독병원에서 전라남도청 부근 상무관으로 옮겨졌다가 5.18민주화운동이 끝난 뒤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되었다. 1997년 6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26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박금희의 사연은 「금희의 오월」이라는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극단 토박이가 1988년 제1회 민족극 한마당에서 초연(初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