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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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Mun Jaeha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64년 6월 1일 - 문재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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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80년 - 문재학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3~27일 - 문재학 전라남도청에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7일 - 문재학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6월 6일 - 5.18구묘지에서 가족들에 의해 신원 확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6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학교|수학지 | 광주동성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남구 서문대로 627번길 20[진월동 406] |
활동지 |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상업고등학교 학생|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문재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항쟁에 참여해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문재학은 1980년 5월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5.18민주화운동에 동참하였다. 문재학은 5월 23일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고 전라남도청에 머물며 사상자들을 돌보고 유족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였다. 5월 25일 어머니가 문재학을 데려가기 위해 전라남도청에 찾아왔다. 문재학은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전라남도청 안에서 사상자들을 돌보는 일이니 위험하지 않다고 안심시키며 돌아가지 않았다.
5월 26일 계엄군이 광주로 재진입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문재학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이제부터는 밖에 못 나가요. 나, 그냥 여기에서 끝까지 남기로 했어."라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전라남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던 문재학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을 입고 사망하였다.
계엄군이 물러난 뒤에도 가족들이 문재학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담임선생님이 『전남일보』에 사망자 명단이 실렸는데 문재학의 이름이 있다고 연락을 주었다. 1980년 6월 6일 가족들은 우여곡절 끝에 담임선생님과 함께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으로 가서 무덤을 파헤쳐 신원을 확인하였다.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시신을 가매장(假埋葬)한 것이다. 1997년 6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2-34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