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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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Kim Jaehw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54년 10월 20일 - 김재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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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김재화 광주역 시위에서 선두에 섰다가 공수부대로부터 총격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김재화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활동지 | 광주역 -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235[중흥동 611-14]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 시민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김재화[1954~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역 시위에서 선두에 섰다가 공수부대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김재화는 대학 졸업 후 임시 직장에 나가기 시작한 지 두세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전라남도 광주시에 계엄군이 밀어닥치고 무고한 시민들이 비명에 쓰러져 가는 참상을 목격한 김재화는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5월 20일 밤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고, 광주 시민들은 광주역에 공수부대가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광주역으로 모였다. 5월 21일 새벽 2시경 시위대에 의해 공수부대가 밀려나기 시작할 때 어디에선가 총성이 울렸다. 공포탄이었다. 시민들은 흩어졌던 대열을 다시 정비하여 공수부대에 맞섰고, 그때 다시 총성이 울렸다. 시위대 맨 앞에 서 있던 김재화를 비롯한 청년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김재화의 친구라고 하며 집에 소식을 전한 때는 5월 21일 새벽 4시쯤이었다. 김재화가 총에 맞아 의원에 데려다 놓았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김재화가 숨을 거둔 뒤였다. 가족들은 김재화를 외가 선산이 있는 전라남도 담양군에 묻었다가 6개월 뒤에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으로 이장하였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다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20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