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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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Kim Seonh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35년 10월 3일 - 김선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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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일 - 김선호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거주|이주지 | 무등맨션 -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충장동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 시민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김선호[1935~1980]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청 부근 무등맨션에 거주하고 있었다. 몇 명의 학생들이 무등맨션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중에 확인하려고 쫓아 올라갔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아내는 강을순이다.
[활동 사항]
김선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청 부근 무등맨션[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93-5] 402호에 살고 있었다. 무등맨션은 전라남도청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5월 21일 오후 김선호는 가족과 함께 피신하기 위해 집에서 나오다가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2명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며 문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청년들에게 계단을 이용해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하고 가족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 뒤 청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김선호는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실에서 전화가 와 아내 강을순이 옥상에 올라가 보니 남편이 쓰러져 있었다. 김선호가 올라갔을 때 학생들은 이미 사망해 있었고 김선호 역시 총에 맞았다. 이 광경을 지켜본 근처 관광호텔 직원들이 달려와 급히 지혈하던 중 김선호가 "402호"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듣고 무등맨션으로 전화를 해서 총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절친한 사이였던 옆집 남자가 소식을 듣고 올라와서 김선호의 맥을 짚었을 때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5월 23일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장례를 치르고 매장을 하던 중 계엄군의 총소리에 놀란 인부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3개월이 지난 뒤에나 봉분을 만들었다. 그 뒤 담양군 월산면 천주교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가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16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