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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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萬成 |
영어공식명칭 | Choe Manseong |
이칭/별칭 | 구산성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노기욱 |
출생 시기/일시 | 1920년 1월 5일 - 최만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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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3년 3월 - 최만성 전주제2공립보통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3월 11일 - 최만성 광주사범학교 학생들에게 배일 사상 고취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6월 8일 - 최만성 광주지방법원에서 안녕질서 위반으로 징역 6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60년 4월 5일 - 최만성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최만성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풍향리 560 |
학교|수학지 | 전주완산초등학교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매곡로 22[동완산동 167] |
활동지 | 김주호 자택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만성(崔萬成)[1920~1960]은 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풍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풍향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구산성차(鳩山成次)이다. 1933년 3월 전주제2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졸업 후에는 전라남도 광주, 함경남도 단천, 경성, 인천 등지로 직장을 옮겨 다녔다. 최만성은 강제 징집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작은아버지의 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일제 조선 통치의 부당성을 역설하였다. 그러던 중 1944년 3월 11일 광주 지역에 사는 김주호(金周浩)의 집에서 광주사범학교 심상과 학생들에게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렸다.
[활동 사항]
최만성은 작은아버지가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집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일본의 조선인 차별 대우에 희생된 것"이라고 주변 인사들에게 배일 감정을 역설하였다. 일제는 최만성을 일제 조선 통치의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민족 편견을 조장하는 불순분자로 간주하였다.
1944년 3월 11일 전라남도 광산군 서방면 문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김주호의 집에서 근로봉사를 나온 광주사범학교 심상과 4학년 학생들에게 태평양 전쟁의 허구와 잘못을 설명하였다. 광주사범학교는 1938년 4월 9일 조선총독부가 5년제 심상과, 1년제 강습과, 6년제 부속 소학교 등을 설치하여 운영한 학교이다. 태평양 전쟁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미국·영국·네덜란드·소련·중국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일제는 '대동아 전쟁'이라고 불렀다.
최만성은 학생들에게 배일 사상을 전파하고자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배의 당위성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최만성은 일제가 중국과의 장기 전쟁으로 극심한 물자 부족에 허덕이는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다. 일제는 「육군형법」 제99조, 「군형법」 제100조, 「조선임시보안령」 제20조, 「형법」 제34조 1항 전단 제10조 등을 적용하여 최만성을 구속하였다. 1944년 6월 8일 최만성은 당시 나이 25세로 광주지방법원에서 안녕질서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