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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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車學奉 |
영어공식명칭 | Cha Hakb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효선 |
[정의]
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차학봉(車學奉)[1902~?]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에서는 김복현(金福鉉)[김철(金鐵)] 등이 주도하고 광주공립농업학교와 숭일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1000여 명의 광주 면민들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만세운동에서 손병희(孫秉熙) 이하 33인이 연서한 「독립선언서」와 「경고! 우리 2천만 동포」라는 제목의 경고문이 뿌려졌다. 또한, 작은장터에 모여 태극기나 손, 모자를 흔들며 전라남도 광주 시가지를 따라 줄지어 행진하였다. 일본 군경은 광주우편국 부근에서 시위 군중 100여 명을 체포하는 등 탄압에 나섰다.
차학봉은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었다. 이후 「보안법」 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에서 1919년 4월 30일 징역 4월을 선고받았으나,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재심하여 징역 4월을 선고받았다. 1919년 12월 14일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