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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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昌模 |
영어공식명칭 | Choe Changm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보라 |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최창모(崔昌模)[1923~2011]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본정 5정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에서 태어났다. 1943년 10월 일본 오사카공학교[大阪工學校]에 재학하는 동포 급우들과 조선 독립 등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시국담을 나누는 등 한인들의 항일 독립의식을 고취에 앞장서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최창모는 1932년 5월경 일본으로 건너가 소학교를 졸업한 뒤, 1941년 4월 오사카시[大阪市] 키타구[北區] 미나미모리마치[南森町]에 있는 오사카공학교 야간부 전기과에 입학하여 1944년 3월에 졸업하였다. 1943년 4월 오사카공학교에 다니면서 육군병기학교 생도 채용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민족 차별로 인해 불합격하였다.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멸시, 차별 대우 등에 민족적 분노를 느끼고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게 되었다.
1943년 10월 오사카공학교에 재학하는 동포 급우들과 조선 독립 등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시국담을 나누는 등 한인들의 항일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44년 6월 30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임시취체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창모는 2011년 11월 1일 사망하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4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