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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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泳云 |
영어공식명칭 | Choe Yeong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보라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한 독립유공자.
[개설]
최영운(崔泳云)[1892~1946]은 전라남도 광주부 광주읍 누문정 64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에서 태어났다.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 책임자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최영운은 1928년 제4차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참여하여 강석봉(姜錫奉), 김재명(金在明) 등과 함께 전라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비밀결사 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 광주지부를 조직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는 노동자, 농민, 지식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조선 독립 쟁취를 목적으로 항일 활동을 한 단체이다.
최영운은 고려공산청년회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 책임자로 있으면서 노동자·농민·청년들을 규합하고, 이들에게 항일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8년 7월에서 8월 사이 제4차 조선공산당 탄압 사건으로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의 활동가들도 대량 검거를 면치 못했다. 최영운도 이러한 과정에서 1928년 8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최영운은 1946년 1월 4일 사망하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