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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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泳奎 |
영어공식명칭 | Jang Yeonggy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보라 |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장영규(張泳奎)[1895~1970]는 전라도 광주목 부동방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경제학부에 재학 중 2.8독립선언[조선청년독립선언] 행사를 주동하였다. 일제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탄압과 감시 속에서 일본과 국내를 오가며 피신 생활을 하였다.
[활동 사항]
장영규는 1919년 1월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東京朝鮮基督敎靑年會)의 서기로 선출되어 재일 유학생의 단합을 위해 활동하면서 각종 연설회, 집회 등을 통하여 민족정기와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19년 2월 8일 독립선언을 추진할 때 각 부서의 연락과 서무를 맡아 활동하였으며,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남녀 유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역사적인 '2.8독립선언'을 발표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1919년 2월 12일 「조선청년독립단 민족대회 소집촉진부 취지서」 600여 매를 등사하여 유학생들에게 배부하고 시위 계획을 세우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좌절되고 말았다. 1924년 4월 일제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탄압과 감시 속에서 일본과 국내를 오가며 피신 생활을 하였다.
장영규는 1970년 6월 27일 사망하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2묘역-522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