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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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永求 |
영어공식명칭 | Im Yeongg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보라 |
[정의]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임영구(林永求)[1892~1952]는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은 1919년 3월 10일 부동교 아래 작은장터에서 일어났다. 김복현(金福鉉), 김강(金剛), 최병준(崔丙浚), 최한영(崔漢泳) 등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주도자들은 계획에 따라 부동교 아래 장터에 나가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수백 명의 군중을 지휘하였다. 임영구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에 동참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임영구는 1952년 7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