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35 |
---|---|
한자 | 李南彩 |
영어공식명칭 | Lee Namch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남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남채(李南彩)[1899~?]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중흥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대규모의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진 후, 전라남도 광주에서도 지체 없이 만세 운동 계획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무렵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 및 일반 주민 등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구한국(舊韓國) 국기인 태극기를 흔들고 혹은 손을 들고 모자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며 서문통을 지나 광주지방법원, 광주경찰서, 광주우체국 앞까지 줄지어 행진하였다. 당시 학생이었던 이남채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경고 우리 2천만 동포'라는 제목의 경고문, 조선의 독립을 구가하는 「독립가」 등을 나누어 주거나 시내 곳곳에 살포하는 등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자, 만세 시위에 참가한 이남채도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원심이 확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