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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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源永 |
영어공식명칭 | Bak Wonyeong |
이칭/별칭 | 주옥,포류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병남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3월 - 박원영 기우만 의병부대 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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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96년 3월 - 박원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박원영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 국가보훈처 2021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
출생지 | 전라도 광주목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학교 재임 |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박원영(朴源永)[?~1896]은 전라도 광주목에서 태어났다. 자는 주옥(周玉), 호는 포류재(蒲柳齋)다. 기우만(奇宇萬)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호남 일대에서 활약하였으며, 광주향교(光州鄕校)의 재임(齋任)으로 광주향교를 끝까지 지키다가 의병을 진압하러 온 진위대(鎭衛隊)에 의해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1895년(고종 32) 8월 명성황후가 일제의 사주를 받은 낭인들에게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그 소식을 들은 호남 지방에서도 격분하였다. 이에 1896년(고종 33) 2월 기우만, 기삼연(奇參衍), 고광순(高光洵) 등 유학자들은 원수를 갚고 나라를 구원하자는 논의를 하였다. 이때 박원영도 비분강개함을 느꼈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895년 11월 일제와 결탁한 김홍집(金弘集) 내각에 의해 단발령까지 내려졌다. 이에 반발하여 전라남도 광주의 기우만과 장성의 기삼연 등이 각기 1896년 3월 의병을 일으키자, 박원영도 기우만 의병부대에 동참하였다.
기우만 의병부대는 광주향교에서 의병들을 모아 규칙을 정하고 전략을 의논하였는데, 며칠 안에 의병의 형세가 매우 성대하게 되었다. 이때 장성의 기삼연이 군사 300명과 함께 와서 군무를 자원하여 맡았다. 나주에서는 이학상(李鶴相)을 의병장에 추대하여 참서관(參書官) 안종수(安宗洙)를 처단하였다.
이처럼 호남 일대에서 의병의 성세는 대단하였다. 그런데 경상도 진주로 출동한 관군이 호남으로 반격해 오면서 의병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리하여 의병과 연락이 있던 담양군수 민종렬(閔種烈)이 붙잡혔고, 박원영도 광주향교에서 맞서다 붙잡혀 처형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2021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